우리 머릿속엔 너무나 작은 성이 있다.
얼마 전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하는 C의 엄마는 웃는 듯했지만, 눈가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맺혔다. 첫아이의 졸업이라 따뜻한 털모자를 쓰고, 평소보다 신경 써 화장도 하셨는데, 어느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감격스러워서일까? 하지만 그 눈물에는 단순한 감격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릿해졌다.
C는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엄마를 위해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율동을 하며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무대를 지켰다.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를 약속이 가득 담긴 노래를 부르면서.
C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유치원에 처음 왔다. 친구들과 함께 놀잇감을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다른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만지면 놀이가 방해받았다고 생각해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감정이 격해지면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기분이 상하면 친구를 밀치기도 했다. 그런 C와 함께 노는 친구들은 긴장했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C를 이해하려 애썼다. 때로는 맞춰주려 노력했고, 때로는 감정을 다독여 보려 했다. 하지만 점점 지쳐갔고, 결국 내게 털어놓았다.
"이건 교육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나는 C의 엄마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마치 이미 수없이 들어온 문제라는 듯, 지친 얼굴로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그래서 지금 데리고 가요?"
그 말에 순간 당황했다. C의 감정 조절 문제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다른 어린이집이나 태권도 학원에서도 같은 문제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데려가라’는 말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 태도 뒤에는 오랜 시간 쌓인 피로와 체념이 묻어 있었다. "아니, 데려가시라는 게 아니에요."
나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C는 기관 경험이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을 거예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처음부터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보는 게 어떨까요?"
그제야 엄마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희망차게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볼게요."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아이가, ‘적응할 수 없는 아이’로 분류되는 기분은 어떨까? 우리는 그런 구분을 내릴 자격이 있는 걸까? 그래서일까. 때로 의무교육이란 제도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배제되지 않을 최선의 권리일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C는 특수지원센터에서 검사를 받았고, 유치원의 특수학급에 배정되었다. 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을 오가며 통합교육의 형태로 적응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특수교육’ 하면 장애를 가진 아이들만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수교육은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있는 유아를 지원하고, 조기 개입을 통해 더 큰 어려움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유치원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초등학교에서는 다시 일반 학급으로 배치될 수도 있다. C 역시 초등학교 진학 후에는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유치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기관에서도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끔 이런 말이 오간다. "저 아이, 특수학급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거친 행동을 하거나 반복적으로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 아이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위험한 아이는 미리 분리해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이야기가 나만의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누군가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혹시 다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지나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와 공감의 영역을 좁혀버린다. 그렇게 한두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다 보면, 그것이 깨뜨릴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유아들은 신체가 먼저 반응한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도 눈물이 많은 편이다.(성인이 되면 눈물이 많다는 건 단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나조차도 머릿속이 엉켜버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물며 이제 겨우 다섯 살인 C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C의 엄마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업고 일터에 나가야 했다. 주변 엄마들과 교류할 시간도, 정보를 얻을 기회도 부족했다. 그런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블록을 내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가위 사용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위는 위험한 물건 아니에요? 아이에게 줘도 되나요? 다치면 어떻게 하죠?"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C의 엄마는 교육기관을 통해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가위를 아이에게 줄 수 있는지조차 고민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출발선이 같은 것과는 다르다.
나는 C의 졸업이 그 어느 때보다 기뻤다. C가 성장한 것도 기뻤지만, 엄마가 유치원 학부모로서 한 걸음 나아간 것도 기뻤다. 물론, C의 성장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는 어디에서 첫발을 내디뎌야 했을까? 아이를 가르치고, 끝까지 지도해 준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모가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지만, 부모만으로는 채워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C의 엄마가, 앞으로 머물 초등학교에서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그들은 새로운 출발을 할 준비가 되었다. 정작 준비가 덜 된 건,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고, 아이도 그렇게 자라나는 거예요."
그때 전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조용히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