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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배울 수 있었나요?

어쩌면 인생은 마리오 게임의 계단일지도

by flyingoreal

주말 이른 아침, 카페에서 책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건너편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그들은 분명 막역한 친구 사이인 듯하다. 유치원에 들어가는 자녀들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말이다. 한 친구가 자녀를 위한 영어와 한글 교육에 대해 열심히 물어보는데, 시간당 8만 원이라는 영어 방문교사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이미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는 모습이 진지하기만 하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아들이 다녔던 수학학원 원장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매년 다른 아이들이 와도, 수학 1이든 미적분이든 똑같은 부분에서 막혀요." 처음 들었을 땐 의아했다. 요즘 아이들이 이토록 똑똑한데 어떻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부분에서 어려워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반복적인 지점에서 막히는 아이들을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부모들은 좀 더 빨리 아이가 배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행학습이라는 전투에 아이들을 내보낸다. 세 살, 네 살 아이들이 이 세상을 알아가는 첫 디딤돌로 영어나 한글 교육을 택하는 모습도 늘 반복된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부모들의 머릿속을 채운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 단계씩 착실히 올라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다. 어쩌면 발을 잘못 디디면 사라지고, 굴러 떨어지고, 운 좋게 잘 밟으면 올라갔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최종 지점에 도착하는 '마리오 게임'의 계단에 더 가깝다.

"우리 아이는 이름을 쓸 때 받침만 따로 써. 기시우를 쓰고 나서 ㄴ을 마지막에 덧붙이더라고." 친구의 말에 그 말을 들은 친구도 웃으며 거들었다. "나 그거 뭔지 알아. 우리 애는 급할 때면 이유미가 10 유미가 된다니까요." 아이들의 이름 쓰기 에피소드가 이어질 때마다 웃음이 번졌다. 한글을 어떻게 가르치냐는 질문에 경험 많은 친구는 조언을 건넸다. 자모음부터 시작하는데, 처음엔 짜증을 내더라도 곧 익숙해진다고. 심지어 아이가 글자에 관심이 많아서, 설명하려고 그림을 보여주면 "아니 엄마, 그림 말고 글자요"라며 이야기한단다. 이런 경험담은 다른 부모들에게 특별한 노하우처럼 들리겠지만, 모든 아이에게 통하는 정답은 아닐 것이다.

내 큰아이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직장이 멀고 둘째까지 임신했을 때라 주중엔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겼던 시절이었다.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온라인서점을 통해 그림책을 보내며 짧은 편지를 함께 썼다. 친정어머니는 그 편지를 김치냉장고에 붙여두셨고,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김치냉장고 앞에 앉아 그 글을 읽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글을 외우게 된 아이는, 글이란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글자를 읽게 된 아이를 보며 나는 신통해하기만 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려니 생각하고 혼자서 책을 보게 했는데, 어느 날 아이에게 빌려준 책이 <일어나요 로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읽혔다는 게 부끄럽지만, 당시엔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너, 변호사가 뭔지 알아?"
"간호사 비슷한 거요?"


아이는 얼마 전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났던 간호사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글자를 읽고 말을 안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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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피리부는 사나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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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피리부는 사나이 중에서 ⓒ넷플릭스
방구뽕의 이야기 중에 '놀이'를 '배움'으로 대체해 보면 새롭게 행간이 읽힌다.


유아기 한글 교육은 부모마다 다르게 바라본다. 어떤 이에겐 큰 고민거리지만, 또 어떤 이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때가 되면 저절로 배울 거라 믿는 부모도 있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글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그 마음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실수를 범한다. 의미와 목적 없이 '공부'라는 이름으로 글자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금세 흥미를 잃는다. 처음에는 즐겁게 시작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해하고 시들해지는 이유다. 우리가 길거리의 영어 간판은 쉽게 읽으면서도, 정작 영어 일기 쓰기는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글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 안에 감정이 실리고 이야기가 담길 때 비로소 살아난다. AI가 발달하는 시대일수록 이런 인간다운 소통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부모가 아이의 한글 해독 능력은 걱정하면서도 표현하는 즐거움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맞춤법을 틀리는 것은 걱정하면서도, 글쓰기를 즐기지 않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글자를 익히는 것은 아이에게 멋진 그릇 하나를 내주는 것이다.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어떤 음식을 올릴 것인지, 누구와 나눌 것인지는 온전히 아이의 판단과 결정, 기호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다. 결국 배움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어야 한다. 비싼 학원을 보내거나 학습지를 시키는 것보다,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레 감사함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번 잃어버린 배움의 즐거움은 되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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