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망설임을 부르는 두 가지 심리 효과
직장 동료가 중학생 딸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 상담을 갔는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자주 엎드려 잔다고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고 했다. "이럴 바엔 미술을 시켜야 하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술이 공부보다 쉬운 선택일 것 같지만, 요즘은 미술 역시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말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의 변화를 반기기보다는 우선 걱정이 앞서는 건, 그녀가 특별히 보수적이거나 걱정이 많아서가 아니다. 대부분 부모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부모의 고민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성실히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공부만 잘한다고 인생이 순탄하게 펼쳐지지 않으며, 오히려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극적인 전환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자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을 가겠다고 할 때, 부모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일시적으로 변덕을 부리는 것인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결정적 순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고민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의 삶은 이런 판단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모딜리아니는 생전에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으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랑하는 에뷔테른과 결혼했지만, 가난한 화가였던 그의 존재는 당시 처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에뷔테른의 부모는 그들의 결혼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두 사람은 결국 처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에뷔테른의 부모는 딸과 손녀만 받아들이고 모딜리아니는 철저히 외면했다. 모딜리아니는 가족과 떨어져 쓸쓸히 병으로 생을 마쳤다. 남편이 죽자 슬픔으로 이틀 뒤 에뷔테른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에뷔테른의 부모가 얼마나 낙담과 절망을 했을지, 미움과 분노, 후회가 어디까지 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에뷔테른의 부모는 딸과 사위의 합장을 반대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사후 15년이 지나자 1000배의 천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에는 처가로부터 멸시를 받은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성공한 화가로 재평가되었다. 부모의 판단이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상황에 대한 판단이 늘 현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눈앞의 사실, 그에 따른 감정, 기대와 연결된 해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대상에 대한 평가는 바뀔 수 있다.
무거운 책임감이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미디어에서는 "아이의 꿈을 응원한 부모덕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부모의 마음은 흔들린다. '우리 아이도 혹시 특별한 재능이 있진 않을까?' 하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생각에 다시 주춤한다. 결국 자녀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묵묵히 지켜봐 줘야 하는 사람은 부모 자신이다. 이러한 마음의 갈등은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부모에게 허락된 고민인지도 모른다.
부모가 새로운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두 가지 심리 현상이 이러한 망설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유 효과'는 이미 가진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소유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대학 마크가 새겨진 머그컵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 참가자들을 구매자, 판매자, 선택자로 나누었고 서로 사고팔도록 했다. 컵을 소유한 판매자는 구매자들에게 컵의 가격을 매우 높게 제시했다. 반면 컵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컵을 구매하려는 사람은 상대의 컵의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 컵을 소유하지 않은 선택자는 과도하게 가격을 매기지 않고 더 중립적인 판단을 내렸다. 즉, 보다 중립적인 가치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이는 '현재의 것, 현재 상태를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을 가진 소유자와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선택자의 차이를 보여준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설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정보만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소유 효과와 확증편향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직장 동료는 아이의 변화를 마주하고 불안을 느꼈다. 기존의 안정감을 놓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불안이 작동하면 선택적으로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모으고 반대 의견은 줄이게 되기 쉽다. 어느 집 아이가 진로를 바꿔 오히려 승승장구해서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나 무소의 뿔처럼 외길을 걷더니 5수 만에 좋은 학교에 갔다는 사실을 견주어 보고 어떤 쪽의 정보가 더 많고 무거운지 재어보기도 한다.
유치원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단순하게 관찰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한 번 선택한 장난감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새로운 장난감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느끼는 ‘소유효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매력적인 장난감이 나타나면, 아이는 주저 없이 기존의 것을 내려놓는다. 이때는 후회도 망설임도 없다. 반대로, 타이밍을 놓쳐 다른 아이가 그 장난감을 먼저 차지하면, 아이는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선택이 삶에 미치는 범위와 깊이에 있다. 아이는 장난감 하나로 울고 웃지만, 어른의 선택은 진로와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귀결은 아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여정의 한 장면일 뿐이다.
부모,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것
우리는 오랫동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변화와 선택을 두려워한다. 특히 자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자녀를 위한 것이기에 부모는 과도한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답을 한 번에 찾아주기보다는 아이가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할 준비가 될 때까지 부모가 기다려주는 것이다.
부모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 효과와 확증편향을 인식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열린 마음을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교실에서 잠 좀 잤다고,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어차피 나비도 날개를 펴기 전에 번데기 속에서 조용히 긴 잠을 자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