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走)가 꼭 되어야 하겠습니까?
화살이 꽂힌 순간, 주(走)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쿵.
거대한 몸집이 땅을 울리며 쓰러졌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땅 위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도 그 눈빛에는 두려움도, 원망도 담기지 않았다. 그저 맑기만 했다. 무후(無厚)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주(走)의 머리를 감쌌다. 따뜻한 숨결이 손끝에 스쳤다가 점점 약해져 갔다.
"너를 보며... 나를 보는 줄 알았다."
무후(無厚)는 떨리는 손으로 갈기를 쓰다듬었다. 한때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그 윤기 나는 갈기가 이제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네가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는 게 행복한 거라고 생각했어. 어리석었다. 네가 원한 건 그저 내 곁에서 평온히 지내는 것이었지도 모르는데…”
그제야 무후(無厚)의 마음속에 지난날이 떠올랐다.
모나라 왕 무후(無厚)는 본래 심성이 온화하여 인근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냈고, 큰 전쟁 없이 나라를 다스렸다. 어느 날, 초라한 행색에 등이 굽은 노파가 무후(無厚)를 찾아왔다. 그녀는 기침을 쿨럭거리며 말했다. "소인은... 늙어서 더는 돌볼 수 없습니다." 그 뒤로 말 한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털은 거칠고, 갈기는 엉켜있고, 발굽마저 갈라져 있었다.
"이 녀석을 담(潭)이라 불렀습죠. 깊고 맑은 연못처럼 마음이 고요한 아이예요. 곁에 두시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실 겁니다.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노파의 말에 무후(無厚)는 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세상의 모든 선함이 담겨있는 듯했다. 무후는 노파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후 무후는 마구간을 드나들며 정성껏 담을 돌보았다. 직접 솔질을 해주고, 좋은 꼴을 먹였다. 상처 난 발굽에 약을 바르고, 엉킨 갈기를 빗어주었다. 갈기는 점점 윤기를 되찾고 털은 고와졌다. 무후는 속으로 "이렇게 기품 있는 말을 그냥 담(潭)이라 부르는 건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말을 나만 보고 있자니 아깝구나." 자기도 모르게 무후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을 듣고, 곁에 있던 신하들이 거들었다. "이 말은 마구간에만 두기엔 너무 빼어납니다. 더 큰 곳에서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리하여 무후는 백성들 앞에 나아갈 때마다 담(潭)을 타고 나섰다. 그리고 더 이상 담(潭)이라 부르지 않고, 주(走)라고 불렀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저 갈기 좀 봐! 고개를 높이 들고 저렇게 위엄 있게 걷는 모습을 보니 왕의 말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자 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꾸며도 말은 말이지... 왕궁에서 기름칠하니까 저렇게 보이는 거 아닌가?"
그 말이 무후(無厚)의 귀에 들렸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니다. 이 아이는 진짜 명마야. 증명해야 해.'
무후(無厚)는 주(走)와 함께 국경을 넘어 전장에 나섰고, 백성들의 환호와 자부심은 무후(無厚)를 전장으로 향하게 했다. 첫 번째 원정의 승리는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졌다.
주(走)는 언제부턴가 달리기를 주저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무후(無厚)는 몰랐다. 아니, 보려 하지 않았다.
'변덕이야. 명마도 가끔 그러는 법이지.'
네 번째 원정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결국 딱 한 번의 화살이 주를 쓰러뜨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주(走)의 숨소리가 더 약해졌다. 그 맑은 눈이 천천히 감겨갔다.
"너는... 너는 그냥 담(潭)으로 남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조용한 마구간에서, 내 곁에서... 그냥 그렇게..."
마지막 숨이 멈췄다. 무후(無厚)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백성들의 환호도, 전장의 승리도, 주(走)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모나라 왕 무후(無厚)의 이야기는 그렇게 역사 속에 잊혀 갔다. 주(走)의 이름도, 그 선한 눈빛도 세상에 오래 남지 않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것이다. 모나라는 ‘엄마’를 뜻하는 母에서 따왔고, 왕의 이름인 무후(無厚)는 비움을 뜻하는 '無'와 두터움, 온화함, 포용력을 상징하는 '厚'에서 가져왔다. 무후는 담(潭)이라는 말을 만나 돌보며 그 변화를 기뻐했지만, 점점 애정이 집착으로 변해 갔다. 날마다 공들인 만큼 변화하는 담을 보며, 결국엔 더 멋지길 기대하게 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더 멋지길, 더 환호받길 바라는 마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이 더 멋지길, 더 환호받길 바라는 마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의 시작은 너무도 순수했다. 그 마음을 발판 삼아 더 나아지려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세상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가지듯 그것도 그 가치를 찾을 곳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아무 의문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출발선은 첫 번째 전장에서의 승리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존재 자체를 잊게 만든다. 결국 무후는 비움과 포용력이 공존하는 상태를 잃고, 상대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마음마저 놓치고 만다.
며칠 전, 가족 동반 모임에 나갔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녀들 이야기가 나왔다. 재수와 편입을 거쳐 두 자녀를 모두 좋은 대학에 보낸 지인이 말했다. “나는 용돈을 주면서 주 단위로 일정하게 주고, 여유돈 20%를 더 얹어줘요. 대신 아빠한테 용돈을 받으려면 매일 밥 먹은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죠.” 순간,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 매일 밥 먹을 때마다 음식 사진을 찍어보내며 노모를 안심시키는 장면이 떠올랐다. 감동적이었던 그 장면과 지인의 사진 이야기는 묘하게 달랐다. 왜 그럴까?
나는 아이가 매일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우리 아이들이라면 그런 조건을 수긍하기보다 차라리 굶는 쪽을 택할 ‘삐딱한’ 성격들이라서. 그분의 자녀를 순하다고 해야 할지, 착하다고 해야 할지, 부모의 위엄을 높이 평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실, 그런 평온한 지인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별하게 되었고, 모든 일에 일반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 꼰대 양반들아”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지인들이 아들에게 “꿈이 뭐냐, 토익은 몇 점 받았냐, 오픽 시험은 봤냐, 대학 복학하면 열심히 해서 취업해야지, 그러면 옷 한번 사줄게”라고 웃으며 말하는 걸 보면서, 나는 “이 꼰대 양반들아”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인생이 그렇게 쭉쭉 뻗어줄 리 없다는 것, 노력할 기회조차 필요하고, 그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닐 텐데.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낯부끄러웠다.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화낼 걸"이라며 웃었다. 아들은 "어떤 애들은 기숙사 복도에 나가 울면서 전화를 받아요. 엄마 아빠한테 그만하라고 하면서요. 그런 애들 많아요."라고 말했다. 친구들 부끄러워서 복도에 나와 목소리를 낮춰 애원하듯이 부모에게 거리를 좀 두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나도 아이와 독립적인 관계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째 아이의 방황이 있었고, 대학 입학과 군대를 거쳐 둘째 아이의 방황이 찾아왔다. 그 길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가 그렸던 인생 설계도를 비틀며 나를 흔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인생은 매끈하게 배경과 인물을 배치해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원하는 아이템으로 꾸미고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아직 전장에서 화살을 맞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 적당히 회복될 때 전장에서 돌아왔다. 마구간에서 쉬고 있다고 돼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달릴 수 있을 때 달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지인은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후, 핸드폰에 감시 프로그램을 깔아 두고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동료들이 “야, 이제 그만해라”라고 말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해는 되지만, 그 딸은 담(潭)일까, 주(走)일까.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손을 놓아줘야 한다. 한심해 보여도, 시간을 허비하더라도,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부모가 조바심 내고 걱정한다고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주지 않는다. 자신이 그런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를 자기 말에 맞추려고 묘안이나 장치를 쓰는 건, 어린 시절 쌓아놓은 신뢰와 정체성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나 또한 그 부분이 아쉽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좋은 시간이든 좋지 않은 시간이든 공유하는 것이다. 생각을 숨기고 표현하지 않는 것보다, 부대끼며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꽃은 어디에나 있고, 그 꽃을 꽂는 건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의 눈이다. 화려한 주(走)가 무후에게 최선이 아니었듯, 담(潭)이어도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었던 무후(無厚)가 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