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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번 만들어볼래? (매운 맛)

AI 그림책, '딸깍' 아니고 '꼴깍'

by flyingoreal

7개월, 18명, 8권의 그림책. 숫자로 적으면 단촐하다. 하지만 그 사이, 몇 번이나 밤을 넘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https://youtu.be/fpX3p0Vuito)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공립유치원 원감·교사·장학사로 구성된 지역연구회에서 우리는 지역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초반 작업은 신났다. AI로 이미지를 뽑고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일이 낯설고 흥미로웠다. “이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힘이 났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고르던 교사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믿는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들려주는 작가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따라붙었다.

이게 되살려야 할 이야기인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 맞나?


중반부터 그림책 작업은 마냥 즐겁지 않았다. 연구회가 아니라 혼자 하는 작업이었다면 벌써 접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일이 많다는 이유,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이유, 잠시 쉬고 싶다는 이유……. 핑계는 많았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인공지능 그림책 출간’이라는 목표를 함께 붙잡고 있었다. 그 시작을 내가 제안했기에 책임감만큼 부담도 컸다. 지역의 민담과 역사, 지명에 얽힌 자료를 모으고 협의를 마친 뒤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질문을 계속 맴돌았다. “잘하고 있는 걸까?”



지역 그림책을 만들면서 우리는 갑자기 떠오른 영감만으로 시작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장소의 이름과 역사에 담긴 소중한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우리 동네 이름은 왜 목감동이지?”, “왜 월곶일까?” 배경을 알면 동네는 낯선 지명이 아니라 ‘내가 사는 세계’가 된다.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라도 마찬가지다.

유아 그림책을 내는 사람이 늘고, 국내외 작가들의 책을 볼 기회도 많다. 하지만 지역 이야기가 살아 있는 책은 아직 드물다. 개발로 모습이 달라졌어도 ‘여우고개’나 ‘계란마을’처럼 재미있는 지명은 남아 있고, 유명한 관광지와 문화유산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특별한 곳’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장소에 의미를 담은 이야기를 입히면 아이들은 더 그 곳을 사랑하게 될 거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성장해서 그 장소를 다시 만날 때도 반갑고 행복할 거라 믿었다. 문제는 그 믿음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이었다.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세우며 이야기를 붙여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가 허무맹랑해지거나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흘렀다. 문장을 줄이면 맛이 사라지고, 그림을 설명하려 늘이면 장황해졌다. 원하는 그림이 딱 나오지 않으면 글이 길어지고, 그림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잃었다. 서두에만 힘을 쏟다가 마지막은 맥없이 떨어진 연처럼 끝나기도 했다.


작품 중 처음부터 마음에 든 것은 없었다. 탄식이 나왔다.

우리가 읽은 그림책이 몇 권인데, 우리의 창작이 왜 이 정도일까?


혹시 아이들이 신기한 이야기라면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런 미안함도 들었다. “이건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만들려던 게 아니야.” 그림책을 덮고 다시 생각했다.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지. 연구회 동료들의 작업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이 무례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공적인 결과물로 나아가려면, 좋은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지점에서 갈등이 컸다.


우리 모두 그림책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저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였다. 그래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풍보다,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먼저였다. 배경과 캐릭터의 배치가 장면을 얼마나 극적으로 만드는지 몰랐다. 구도가 몰입감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도 감이 없었다.

우리는 그림책 작가를 초대해 창작 연수를 들었다. 디지털 강사에게서 캔바·챗GPT·드리미나로 그림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를 듣고, 그림책을 직접 만들어 보며 확인했다. "아,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실력은 단숨에 붙지 않았다. 시간 속에서 감이 자리 잡은 뒤에야 따라왔다.


초기 스토리보드

나는 취미로 클립스튜디오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래서 그림 자체는 낯설치 않았다. 그런데 그림책 작업을 위해 AI로 ‘원하는 그림’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AI가 우연히 그려주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게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 가까워지려고 프롬프트를 계속 고쳤다. 대강의 스케치가 머릿속에 잡혀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백지를 말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기준을 향해 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챗GPT를 주로 썼다. 스케치 이미지를 먼저 넣고 프롬프트를 더하면 결과가 달라졌다. 원하는 그림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흐름이 막힐 때는 스토리를 입력하고 “스토리보드를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AI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먼저 보였고, 어떤 장면을 핵심으로 뽑는지도 보였다. 그 덕분에 흐름이 정리됐다. 나와 AI의 생각이 갈리는 지점도 짚어낼 수 있었다.



초기 캐릭터 설정 및 장면 구성

4월부터 7월까지는 캐릭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 같은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다른 얼굴이 되곤 했다. 캐릭터를 유지한 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건 더 어려웠다. 가장 일관된 이미지를 ‘참조’로 넣고, 프롬프트를 더 명료하게 써야 했다. 그래서 캐릭터와 배경을 따로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캔바에서 합성했다. 그때는 매일 생각했다. “이미지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작업 후반에는 프리픽(Freepik) 같은 플랫폼을 활용했다. 같은 프롬프트로 결과를 여러 장 뽑아 비교할 수 있었고, 선택지가 늘어나니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그때 문득 2022년 콜로라도 주 박람회 미술대회 사건이 떠올랐다. 미드저니로 만든 작품이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 작품 제목은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이었다. 논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AI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흔들었다.

당시 나는 그 소동을 남의 일처럼 여겼다. “AI로 만든 건데 상을 받는다고?”라는 말에 나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 한 장면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프롬프트를 고치고, 다시 시도하고, 또 다시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몸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제이슨 앨런은 그 작품을 다듬는 데 600번이 넘는 프롬프트와 수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을, 이제는 알겠다.


‘딸깍’ 한번이면 될 일을, 나는 왜 이렇게 애써 하고 있을까?


그리고 8월 무렵, 제미나이 스토리북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밤에 잠들기 전에 아이에게 들려줄 스토리북을 만들어줘.” 이 한 문장으로 몇 분 만에 10장짜리 그림책이 나왔다. 음성까지 붙었다. AI의 속도를, 그때 처음 ‘몸으로’ 알았다.

순간 흔들렸다. 몇 달을 붙잡고 하던 작업이 갑자기 의미 없어 보였다. ‘딸깍’ 한번이면 될 일을, 나는 왜 이렇게 애써 하고 있을까?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모델이 좋아질수록 일이 늘었다. 후반에 만든 이미지에 비해 앞서 만든 이미지가 갑자기 서툴어 보였다. 다시 만들고, 고치고, 또 고쳤다. 초창기였다면 “이 정도면 훌륭해”로 넘어갔을 텐데,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기준이 계속 올라갔다. “조금 더 해볼까?” “이 부분 아쉬운데, 한 번만 더 해볼까?” 그러나 ‘한 번만 더’는 늘 한 번이 아니었다.

AI 시대에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회복탄력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불안이 자주 올라왔다. ‘끝이 있긴 할까?’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완벽한 AI 그림책이 이미 나와버리면 어떡하지?’ 물음표를 품고 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린 장면 중 가장 어려웠던 건, 파도 캐릭터가 달아기를 달래며 ‘비행기 태우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달아기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잡고 빙글 들어 올리는 장면. 사람이라면 몸이 기억하는 동작인데, AI에게는 설명부터가 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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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기에게 비행기를 태워주는 장면 & 그림책 <월곶의 반달빗>


나는 프롬프트에 동작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었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다리를 ㄱ자로 접고, 양팔을 뻗어 달아기의 손을 잡는다.”

그랬더니 기이한 자세가 튀어나왔다. 파도는 추상적인 캐릭터다. ‘파도가 누워서 비행기를 태운다’는 설정 자체가 AI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화면을 보며 잠깐 멈칫했다. 이 장면을 바꿔야 하나. 파도와 달아기가 다른 놀이를 하는 쪽으로 틀어야 하나. 타협안이 몇 개 떠올랐다.


우리 아빠가 생각나요.

그런데 결국 이야기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파도는 달아기를 비행기 태워줘야 했다. 만족스러운 그림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줬을 때 그 장면에서 눈이 반짝였던 게 떠올랐다. “우리 아빠가 생각나요.” 이야기를 듣고 한 아이가 말했다.

맞았다. 아이들이 정곡을 찔렀다. 슬픔과 불안에 빠진 달아기를 “괜찮아”라고 달래는 파도는, 친구라기보다 어른에 가까웠다. 그때 우리는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로하는지. 그 대상이 아이라면 무엇이 가장 공감되는지.

지난한 제작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우리에겐 독자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연구회가 만들고 교육청이 발간해 지역 유아들에게 전해질 책이었다. 읽히지 않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축복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중간중간 바꾸며 반응을 살폈다. 사건이 흥미로운지, 감정선이 너무 빨리 올라갔다가 꺼지는 건 아닌지. 의심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은 나침반처럼 방향을 가리켰다.

작업은 점점 ‘팀 창작’에서 ‘연구회 전체 프로젝트’가 되어갔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던 연구회의 리듬이 깨졌다. 모임은 잦아졌고, 수정도 잦아졌다. 이야기가 특정 장소로 편중되면 다시 조율해야 했다. 어떤 팀은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왜 이렇게 몰아쳐야 하느냐”, “아이들을 위한 일은 맞지만 너무 힘들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언제 멈춰야 하는지 모른 채 프롬프트를 반복해서 넣는 시간들. 종이나 태블릿에 그림을 그릴 때도 하지 않았던 고민을, 나는 AI 앞에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감수’라는 다음 벽을 통과해야 했다. (다음편에 계속)

freepik__-img1-45-96-__31990.png 7개월을 거쳐 완성된 <월곶의 반달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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