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받다가 십 년 감수할 뻔.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의미 있었다
AI로 지역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7개월을 매달렸습니다. 몇 차례 연수를 받고, 그림책 스토리와 그림에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체력도 이내 바닥이 났습니다. 그건 견딜 수 있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기술이 아니라 감수 과정이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2차 검토 의견서가 메일로 왔습니다. 첨부파일이 있었습니다. 얇지 않았습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정하라는 문장 옆에는 이유가 있었고, 이유 옆에는 근거가 붙어 있었습니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중간쯤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더는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종이를 내려놓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건 너무하다.
그때의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읽을 그림책인데…….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동네 이름 하나라도 기억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까지 엄격해야 할까.’ 그날은 더 잘 만들고 싶은 마음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지역 그림책은 교실 안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교사는 늘 아이부터 봅니다. 발달 수준, 관심사, 정서. 그런데 ‘지역’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질문이 바뀝니다.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그래서 감수가 필요해졌습니다. 연구회 안에서 서로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자료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주로 뒤졌습니다. 읽다 멈칫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동네에 이런 일이 있었어?’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었던 동네가, 사실은 낯설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지역교육청 장학사님이 소개해 준 초등학교 지역화 교재는 길잡이였습니다. 유치원에서 교과서 대신 그림책으로 지역을 이야기하려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지역화 교재를 집필하신 교감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지역을 다루는 그림책 작업이 결코 단순히 ‘멋있게’만 마무리될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수는 여러 전문가에게 부탁했습니다. 시흥시청 문화예술과 전문위원, 초등 지역화 교재 집필 경험이 있는 교감 선생님, 시흥문화원 전시팀장, 시흥농업기술센터 연구팀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분야도 관점도 달랐습니다. 감수는 두 차례로 진행됐습니다. 그 사이 조율은 작업 내내 이어졌습니다. 어떤 항목은 감수위원이 직접 기관에 문의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오기도 했습니다.
감수 비용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예산에 없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감수위원들은 퇴근 후 저녁과 주말을 내어 미완성 원고를 읽었습니다. “이 지역 아이들이 읽을 책이잖아요.” 그 말이 끝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물었습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저는 아마 계산기부터 켰을지도 모릅니다.
감수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작품은 우리 팀의 <월곶의 반달빗>이었습니다. 월곶이라는 지명은 아이들에게 낯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역 이름에 담긴 의미를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동네, 참 좋다”라고 말했으면 했습니다.
문제는 이름의 근거였습니다. 감수위원은 월곶 지명의 유래를 먼저 정리해 줬습니다.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달곶이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입니다. ‘달(月)’과 ‘곶(串)’이 합쳐진 말로, 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형을 뜻한다는 해석입니다. 현재는 월곶 JC 건설로 산의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옛 지형도를 보면 조구나리와 구능뿌리 사이 등고선이 가장 높았던 지점이 그 달곶이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다를 향해 반달 모양으로 돌출된 지형인, ‘달(月)’ 과 ‘곶(串, 바다로 튀어나온 땅)’ 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이것 또한 바탕이 되는 원형 이야기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곶’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뾰족한 지형에서 초승달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 영감을 바탕으로 달아기와 파도의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달아기를 파도가 위로하고, 저어새가 달아기를 다시 하늘로 데려다줍니다. 달아기는 반달빗을 남기고 떠납니다.
감수위원은 지명 유래에 대한 창작은 가능하되, 그것이 ‘전설’처럼 읽히지 않게 선을 분명히 하라고 했습니다. 지도나 지형을 배경으로 쓰는 것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간척 이전의 지도를 쓰는 것도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허구가 사실처럼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창작임을 명시하라. 장면 구성을 다시 검토하라. 지도는 빼라. 지형은 현재 모습이 아니라 매립 전 모습에 가깝게. 문장 하나를 고치면 그림이 바뀌고, 그림이 바뀌면 다시 문장이 달라졌습니다. 추석 연휴 동안 낑낑대며 만든 이미지에 또 의견이 돌아왔을 때는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의견서를 펼쳤습니다.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버티기 힘들었던 건 엄격함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엄격함이 제 상상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낸다는 건 결국 그런 이견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도요.
돌아보면, 저는 아이들의 이해력을 은근히 낮게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는 말 뒤에 숨어, 제 편의를 먼저 챙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같은 팀 원감 선생님이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 줬습니다. 감수위원의 기준을 존중하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설명해 오해가 생기지 않게 조율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확실해졌습니다. 집단 창작은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기준이 부딪히는 순간을 피하지 않고, 그 기준을 끝까지 조율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역 아이들의 손에 그림책이 쥐어질 때, 이 모든 과정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저는 압니다. 이 책들이 이야기이기 이전에, 책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역 그림책에서 창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요.
감수위원들의 열정 덕분에 그림책 한 권 한 권이 부끄럽지 않게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작업은 그들의 날카로운 전문성이라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유아들에게, 각기 다른 색을 입은 그림책으로 닿을 수 있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을 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