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누군가 새벽 4시에 하루를 마칠 때,
다른 누군가는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몇 달간 나는 전자였다. 아이를 재우며 잠깐 눈을 붙인 뒤 자정 무렵 다시 일어나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4시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선택이었지만 어느 순간 습관이 됐다.
새벽의 고요함은 분명 매력적이다. 플레이리스트 작업을 할 때면 음악에 온전히 빠져들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밤이 늘 그렇듯, 누적된 피로는 효율을 갉아먹었다.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는 시간인 만큼 곁길로 새기도 쉬웠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야 할 시간에 음악을 감상하고 있거나, 소셜미디어를 탐독하다 혼자 쭈그러드는 일이 반복됐다. 욕망은 언제나 OTT와 연결되어 있어서, 잠깐 긴장을 늦추면 어느새 소파에 익숙하게 앉아 있는 나를 만나게 됐다.
그렇게 피로가 쌓이자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그러면서도 나 홀로 누리는 고요한 밤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스스로 반문하기도 했지만, 육아와 집안일을 마친 뒤 발동하는 보상 심리가 발목을 잡았다. 일찍 자는 건 마치 손해 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내가,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몇 달간 새벽 4시에 잠들던 사람이 별안간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엄청 몽롱했다. 일어나서 뭘 하려 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대로 다시 방으로 들어갈 것 같아 일단 세수부터 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몸을 깨우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산책을 나갔다. 생각보다 추워 짧게 걷고 돌아와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아내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라면 뭐 하나라도 더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허덕이며 하루를 보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오후 4시가 되자 습관적으로 조급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이미 꽤 많은 것을 해냈음을 떠올리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지금, 온몸이 늘어진다. 아이는 놀아달라고 보채는데 정신이 아닌 상태로 버티는 중이다. 새벽 4시 미라클 모닝은 함부로 할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오늘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 밤을 늘려 하루를 사는 것보다, 아침을 당겨 하루를 여는 쪽이 압도적으로 낫다는 것.
결국 시간의 총량은 같다. 다만 그 시간을 어느 쪽 끝에서 쓰느냐가 하루의 밀도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늦은 밤은 하루를 소비하게 만들고, 이른 아침은 하루를 창조하게 만든다. 오늘 겨우 1일 차를 마쳤을 뿐이지만, 그 차이를 몸으로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과연 내일도 새벽 4시에 눈을 뜰 수 있을까. 일단 오늘 밤은 일찍 자는 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