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고 쓰고, 아직 멀었다고 읽는다.
새벽 기상 3일 차, 결과부터 말하면 성공이다. 2일 차의 실패를 딛고 오늘은 해냈다. 그런데 결과를 들여다보면 이번에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일단 성공은 성공이니, 오늘은 내가 왜 새벽 기상을 선택했는지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새벽 기상의 가장 큰 목적은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변화'는 오랫동안 내 삶의 키워드였다. 욕구는 크지만 현실이 늘 그에 못 미쳤고, 그 간극 속에서 욕구불만 상태로 살아온 날이 많았다. 직장을 다닐 때야 강제성이 있었으니 굳이 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선택 사항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퇴사 이후 강제성이 사라지자 아침은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됐고, 새벽 4시에 잠들던 최근 몇 달간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변화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삶이 절박해지는 순간이 왔다.
퇴사 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재정 악화라는 대가는 참혹했다.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지만 한계에 다가오고 있다는 직감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 간절함이 나를 새벽 기상으로 이끌었다.
"새벽 기상이 당장 돈이 돼?"라고 물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수개월을 새벽 4시에 잠들던 사람이 그 관성을 스스로 깨는 선택을 했다는 것. 그 자체가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더라도, 잘못된 신념을 깨는 작은 행동 하나가 때로는 가장 강력한 출발점이 된다.
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수업 전 학교에서 태권도를 배웠던 터라 매일 새벽 등교를 했다.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하루는 그 어린 나이에도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출근 준비를 하시던 아버지 방에서 들려오던 '오성식의 팝스 잉글리시' 라디오 소리도 그 시절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쿨버스 통학을 위해 오전 수업을 주로 배치했고, 1교시가 없는 날에도 일찍 나가 구내 카페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이 기억들은 오래도록 내 세포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다. 새벽 기상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나와 잘 맞았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과만 놓고 보면 3일 차는 성공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어제도 아이를 재우며 일찍 잠들었지만 새벽 1시 30분쯤 다시 깨버렸다. 그 상태로 3시 45분까지 누워 뒤척이다 더 괴로워서 그냥 일어났다. 이건 새벽 기상이라기보다 수면 부족에 가깝다.
2일 차의 실패가 '일찍 자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면, 1일 차와 3일 차는 '충분한 수면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더 깊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시행착오는 예상했던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행착오의 기록 자체가 변화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성공보다 솔직한 실패와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습관이 된다. 나는 지금 그 과정의 한가운데 있다.
혹 나처럼 삶의 변화를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가 이 기록을 읽고 있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줬으면 한다. 완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삐걱거리면서도 계속 기록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