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 마흔 살 일기 - 인생 현타 극복 도전기 ep.02

by 알레

수차례 되뇌며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았지만 결론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 그저 입 밖에 내뱉기 망설였을 뿐이었다. 마케터 정혜윤 님의 브런치 북 제목이 떠오른다. ‘퇴사는 여행.’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앞으로 6개월. 불확실성에 주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나를 벗어버리고 성장해있을, 독립된 나로 새 출발을 하고 있을 나를 기대해보며 기록을 남겨본다.




회사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2013년에 처음 회사 인간이 되었다. 첫 회사에서는 약 2년 반 정도 근무하고 나왔다.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취업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할 무렵 교수님의 도움으로 기회가 닿아 시작했던 첫 직장 생활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퇴사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오는 답답함과 앞으로 삶에 대한 막막함을 경험할 때 결국 떠나게 되는 것 같다. 그 시절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해 보았을 때 기껏해야 과장님들 수준의 급여를 받는 삶인데 너무 암담해 보였다. 그리고 하필 분위기도 한몫했다. 또래의 직원들이 하나 둘 줄줄이 이직을 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사수로 있던 대리도 말년 병장같이 거의 손을 놓고 있다가 결국 먼저 퇴사를 해버렸다. 모든 일이 나에게 몰렸고 감당할 자신도 감당할 마음도 없어 결국 나도 뛰쳐나왔다.



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시대적 기류에 휩싸여 시골 생활을 해보겠다고 아내를 설득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훌쩍 떠났다.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며 자급자족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보겠다고 호기롭게 떠났던 나는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1년 동안의 시골 생활을 요약해보자면 몸 고생 마음고생이었다. 집을 구하는 방식부터 대인관계를 맺어가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서울살이와는 많이 달랐다. 1년 동안 머물렀던 작은 공장은 뚜껑을 열어보니 거의 폐업 직전의 공장이었다. 결국 1년 뒤 가장 마지막에 공장 문을 닫고 나온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1년의 시간은 심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무작정 떠나보는 다소 무모한 행동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은 나만의 일에 몰입하고 사력을 다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조직 안에서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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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쉬다 지금의 직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작은 늘 그렇듯 설레고 신기하고 회사의 아이템을 탐구하는 재미로 매일을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앞서 경험한 1년의 시간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최선을 다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항상 문제의 시작은 조직이 안고 있는 불합리성과 비효율성, 그리고 시장의 한계와 개선되지 않는 처우들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제 이런 문제들은 그냥 회사라면 다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을만한 내공은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어딘가 답답한 마음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해보기로 했다. 나이 마흔에 그저 푸념하며 회사를 때려치울 만큼 무책임할 수는 없었기에 보다 명확한 이유를 찾을 때까지 나 자신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찾아낸 답은 이것이었다.


난, 일을 하고 싶다.
난, 성장을 하고 싶다.


참 아이러니했다. 일을 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난 또 그냥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 밀려왔다. 더 시간을 갖고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마음속으로 목표 시기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마치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마감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처럼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선언하듯 마감 기한을 두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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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개인보다는 조직이, 팀이 더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만큼 회사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지 못하는 조직에서 난 머물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즉 나의 업무를 통해, 내가 속해있는 팀을 통해 계속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이유를 발견하고 나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만큼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지금의 회사에서 5년의 시간이 6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큰 동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다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끄는 삶에 더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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