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사 후 불안을 달래는 방법

- 일단 두드려 맞고 시작합니다.

by 알레

불안하다. 갑자기 불안이 밀려온다. 호기롭게 백수, 아니 자유노동자를 천명한 지 어언 6개월. 겨울에서 봄으로 강산은 변했는데 나는 무엇이 좀 변했나. 변한 것이라고는 머리가 더 길어져 이제는 돌돌 말아 올린 똥머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 말고는 사실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생각의 파도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니 갑자기 불안해진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시점의 불안도 싸잡아 집어삼키는 기분이다.


불안이 시작되면 말이 없어진다. 표정도 사라진다. 세상 까칠한 사람이 돼버린다. 제발 아이한테만은 티 내지 않고 싶어 표정 관리도 해보지만 이내 나도 모르게 욱해버리기도 한다. 슬프다. 그러나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일단 최선을 다해 생각을 달래 본다. 이럴 줄 알았지만 알고서도 막상 상황에 맞닥 뜨리면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만큼 성숙한 인간은 아닌 듯싶다.


갱년기 중년처럼 요동치는 이 마음 어떻게 달래야 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에 좋은 점은 그래도 어지간한 것은 한 번쯤은 겪어 봤다는 것이다. 불안도 한 번 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니 이제 나름 달래는 요령도 생긴 듯싶다. 물론 한 가지 맹점은 어찌 되었든 생채기는 남는다는 것이다.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링 위에 올라간 복서 마냥 일단 가드를 올려준다. 그리고 신나게 두드려 맞기를 시작한다. 아프다. 아프지만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밀려드는 불안은 힘이 제법 세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언제나 처음이 가장 셌다. 어설프게 저항하려 덤볐다가는 오히려 더 다치기 십상이다.


하루 이틀, 또는 그 이상, 이제 좀 두드려 맞았다 싶으면 그때는 상대를 끌어안아 버린다. 이쯤 되면 연신 두드려 맞은 나도 지쳤지만 신나게 펀치를 날린 불안도 그 나름 지쳐버린 상태가 된다. 가드를 올린 채 마주하던 불안을 끌어안아주면 느껴지기 시작한다. 왜 찾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시작된 건지.


상대가 조금 진정이 되면 끌어안은 팔을 풀고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시작해본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훈계하려고 해도 안되고 부인하려고 해서도 안되며 굳이 위로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들어주고, 끄덕여주는 것이 전부다. 그러면 불안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나 이래서 불안해, 저래서 불안해, 나 힘들어, 나만 왜 그런지 모르겠어, 괜한 짓을 한 걸까, 상황이 나아지긴 할까, 내가 미쳤던 것일까, 만약 완전히 망가지면 어떡해,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최악이 아니면 어떡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하염없이 털어놓는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들어주다 보면 멈출 줄 모르고 자라던 것이 점점 멈춰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중 어떤 것은 어느새 희미해져 버리기도 한다. 이제부터 하나씩 대응해줄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내 차례다.


이제부터 불안을 하나씩 뒤집어 본다.


'퇴사하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은 '지금 난 아이랑 함께 우주를 만들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순간이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라는 생각은 '글 쓰는 습관이 생겼고, 책을 읽고 생각을 기록하는 사림이 되었으며, 사진 취미가 생겼잖아.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제는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 되었잖아'로 바꿔본다.


'돈은 벌지도 못하면서 지출만 늘고 있어'라는 삶에 대한 불안은 '솔직히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능성의 불씨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해. 그러니 신중하게 그러나 망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던져보자. 조금만 더 믿어줄래?'라고 타협점을 찾아본다.


생각해보면 불안이라는 것이 사실 전혀 없던 무언가로 인해 생겨나는 경우보다는 늘 가슴속에 안고 살았던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바람은 이쪽인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삶은 저쪽에 있었다던가, 누군가의 삶이 부러워 방법을 찾아 연구하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라던가, 결국 불안의 자리 이면에는 언제나 나의 욕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불안이 그저 싫은 것만은 아니라는 마음마저 생긴다. 불안을 잘 파헤쳐보면 나의 바람이 보다 명확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그런 것은 하루라도 빨리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해봄직한 것들, 아직은 기회가 남아있어 보이는 것들이 있다면 어느 때고 적절한 시기를 만들어 하나 둘 도전해보기 위한 리스트로 만들어 두면 오히려 그것이 삶의 활력이 되어 준다. 인생에 아직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떨리는 일이지 않은가.








불안을 다루는 방법이라고 적어보긴 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자주 겪고 싶지는 않다. 어찌 되었든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 적어도 체증이 생긴 듯 위가 막힌 느낌으로 며칠은 보내야 한다. 스마트폰을 켜고 의미 없이 SNS나 유튜브 등에 접속해 목적지도 없이 떠도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덕분에 수면시간은 늘 부족하고 수면의 질도 덩달아 나빠진다.


그러나 비록 의미 없는 행위들일지라도 그것이 그 나름 불안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면 잠시 동안은 그것 또한 괜찮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같은 종류의 불안이 같은 세기로 다가오지 않기에 오늘의 방법이 내일도 가용한 방법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불안 뒤에는 언제나 인생에 대한 나의 바람이 있었고 그것은 곧 나의 가장 정직한 소망임을 알고 난 후로는 불안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때때로 불안은 반갑기도 하다. 모름지기 글이란 것이 아무 문제없는 일상을 살아갈 때보다 답답한 현실을 마주할 때 더 잘 풀리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결국 관점을 바꾸는 것이 가장 핵심이지 않을까. 삶을 바라보는 관점. 어찌 보면 인생의 불안과 평안은 동전의 양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뒤집어지느냐에 따라 어떤 날은 불안이, 또 다른 날에는 평안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니 불안이 찾아왔다고 너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뒤집기만 하면 삶은 다시 평온 해질 테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