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살 일기 - 인생 현타 극복 도전기 ep.09
직장생활도 이제 어언 9년. 인생의 나름 긴 시간을 직장이라는 곳에서 보내면서 돌이켜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나에게 직장생활은 어쩌면 무기력을 학습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80년대 생인 내가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은 부족한 것을 노력하여 채우는 교육이었고, 직장에서는 부족한 성과를 피드백하여 다음 분기에 어떻게 하면 실적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대한 것이 언제나 회의의 안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누가 과연 완벽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잦은 실패와 부정 평가 속에 갇혀 버리게 되면 점점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표현하는데 지금의 직장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최근 들어 사장님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표현이 있는데 '직원들이 무능해서 그래'이다. 과연 내가 일하는 회사의 동료들은 다 무능한 존재들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나름 학력도 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세상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근데 왜 자꾸 무능한 존재라는 핀잔을 들어야만 할까.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덫
우리는 모두 회사로부터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의욕들이 넘쳐있었다. 각자 아이디어를 찾아오고 은근 서로를 견제하며 사장님께 직접 대화를 요청하여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기억난다. 그 몇 안 되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키려는 모습들이 참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땐 의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아이디어는 대부분 사장님이라는 벽을 만나 와르르 무너졌다.
"쓸데없는 소리"
"나도 옛날에 다 고민해봤어"
"그건 쫄대기들이나 하는 거야"
"그거 팔아서 돈 일이백 남길 거면 그냥 컨테이너 하나 더 들여오는 게 낫다"
...
...
직원들이 점점 경쟁하듯 내지르던 의욕은 사라져 갔다. 심지어 어떤 날은 영업사원들이 사무실에만 앉아서 무슨 영업을 뛰냐고 꾸지람을 주시더니 또 다른 날엔 나가서들 놀고 앉아있지!? 라며 핀잔을 준다. 자신의 거래처를 방문하며 근황을 체크하고 주문을 정리하는 것조차 어떨 때는 필요 외의 행동으로 시간을 때운다는 식의 치부를 받는다. 결국 점점 행동력 조차 사라져 갔다.
지금은?
당연한 결과지만 모두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가면 그냥 안 들어온다. 사장님이 핀잔을 줘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더 이상 아이디어도 자극도 없다. 이젠 표정만 봐도 서로 무념무상의 표정이다. 어떤 새로운 업무 또는 처리해야 할 무언가가 생기면 다들 외면하기 바쁘다. 핑퐁처럼 튕기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누군가 처리하게 된다.
회사는 더 이상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사장님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이미 예견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원들 대부분은 회사의 이전을 기점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는 생각보다 단단한 것 같다. 최근에는 사장님의 가족분들까지 합류하여 직원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우리는 그저 오너 일가의 마리오네트였을 뿐이었다.
퇴사를 생각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말하는 청사진들에 더 이상 기대가 없다. 사장님의 말 조차 신뢰가 없다. 점점 더 무기력이 학습되어 가는 것을 나 스스로 두고만 볼 수 없다. 아직 내 안에 성장에 대한 불씨가 남아있을 때 나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이제는 매일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기 위해 아주 작은 목표들을 세워본다. 가령 브런치에 글을 한 편 발행한다라든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든가, 한달어스를 통해 매일 인증을 완수하는 것도 성취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긍정의 마인드를 채워주는 콘텐츠들을 소비하며 나의 미래를 꿈꿔본다. 물론 현실을 간과하는 몽상가는 아니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오랜 기간의 직장생활 동안 나도 모르게 스며든 무기력의 얼룩을 지워버리는 것이 지금 나에게 급선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올 한 해가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자기 계발에 힘쓰고, 나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알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적어도 멀리 뛰기 위한 움츠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글도 이제 계획했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총 10편을 마음먹고 시작했기에, 이제 마지막 글 만을 남겨두고 있다.
퇴사는 나에게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이다. 그저 그 종착지에 잘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부디 훗날 뒷 이야기를 다시 펼쳐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