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 육개장, 뚝배기 불고기의 공통점은?

그때는 물렸으나 지금은 그립다.

by 알레

"이대리, 오늘은 뭐 먹으러 갈까?"


"뭐 별거 있나요, 늘 가던 대로 순대국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이대리, 순대국밥은 이제 좀 지겨운데 딴 거 뭐 없나?"


"그럼, 오랜만에 육개장?"




"정말 점심 메뉴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일, 오늘은 어디?"


"귀찮은데 백반집이나 가요. 뚝불 한 그릇 하고 커피나 마시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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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터 순대국밥, 차돌 육개장, 뚝배기 불고기



위 대화에서 세 가지 음식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순대국밥, 육개장, 뚝배기 불고기(a.k.a 뚝불)는 직장인에게 가장 보통의 점심 메뉴라는 점이다.


도심 한 복판에 사무실이 있는 직장인들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식당이 있지 않았던 약간의 변두리에서 근무했던 나에겐 거의 매일 같이 선택했던 3대 메뉴였다. 물론 이 외에도 중국집도 있었고, 잔치 국숫집도 있었으며,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비탕, 설렁탕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 세 가지를 벗어난 적은 없다.


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참 물릴 만큼 많이도 먹었다. 근데 희한한 건 그만큼 먹어도 돌아서면 또 생각나더라는 점이다. 아무리 세 가지 메뉴를 순회하듯 먹더라도 어느 때가 되면 맛이 질리던가 아니면 그냥 매일 반복되는 루틴같이 흘러가는 점심시간의 흐름이 질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뱃속에 특식을 넣어줄 필요가 있는데 바로 브런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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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주변에 별 것 없었던 동네에 괜찮은 브런치 카페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축복이었다. 브런치 메뉴를 선택할 땐 점심 식사 멤버가 달라진다. 대부분 비싼 점심을 선호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점심은 쌀이 들어가야만 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조용히 점심을 먹고 싶을 때나 아니면 한 두 명 하고 수다를 떨고 싶을 때 주로 브런치 메뉴를 선택하곤 했다. 나중에 퇴사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2-3일은 카페에 갔다.


아무리 내가 먹는 것에 돈을 아끼는 스타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3대 메뉴와 비교했을 때 브런치는 다소 사치(?)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할 정도의 가격이었기에 회귀 본능이 작동한다. 결국 또다시 순.개.불이 반복된다.


가만히 기억을 거슬러 보면 먹는 방법도 참 제각각이었다. 가령, 순대국밥집에 가면 순대만 넣어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속물을 든든하게 넣어달라고 굳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물에 부추를 왕창 때려 넣거나 다진 양념을 풀어 매콤한 국물을 즐긴다든지, 청양고추를 더 넣어 칼칼함을 더해주는 경우도 있다.


순대와 부속물을 미리 앞접시에 빼놓았다가 식혀 먹거나 뜨거워도 국물에서 바로 건져 먹는 사람도 있고, 순대와 부속물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쌈장에 찍어 먹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애초에 간이 배어 있어 그냥 먹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밥을 먹을 때도 국물과 밥을 따로 먹는 사람, 먹다가 중간에 말아먹는 사람, 애초에 말아서 덜어먹거나 직접 떠먹는 사람 등 참 다양하다.


메뉴 하나만으로도 먹는 방법이 다채로우니 여럿이 가면 은근히 요구 사항도 많았다. 그래도 식당 사장님이야 늘 겪는 일인 듯, 나중엔 알아서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주실 정도였다. 그만큼 자주 갔다는 소리고 동시에 갈 데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 음식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퇴사하고 1년이 다 된 지금, 전업 육아 아빠로 살다 보니 매일의 삶이 거의 반복되다시피 흘러간다. 삶도 반복이지만 하루 끼니 메뉴도 거의 반복된다. 아내나 나나 뭔가를 매일 차려 먹기엔 아직은 식사 시간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주로 집에만 있다 보니 활동량이 줄어서 그런가 배도 많이 고프지 않다. 원래부터 음식에 대해 그리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지 않는 사람이기에 나에게 하루 끼니는 그저 '있는 거'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매 끼니가 거의 비슷하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도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이번엔 일상 메뉴가 거의 유사하게 반복되니 집밥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5년 동안 채워 넣었던 MSG가 아쉬워진다. 돌아보면 그때는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비 일상이 되어버린 것들, 가을바람이 차가워지니 오늘따라 유난히 뜨끈한 국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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