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는 말조차 미안해집니다.

밤하늘의 별이 된 당신들에게

by 알레

밤 새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붙잡고 있는 날이 또 있을 줄이야. 세월호의 아픔이,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 속에서 채 다 가시지 않았는데, 생각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쏟아지는 안타까운 기사들에 마음이 무너지는 하루다.


지인을 통해 단톡방에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핼로윈', '이태원'이라는 키워드만 보고는 그저 무슨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포털 뉴스를 열어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버려 아무것도, 아무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그저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의 염원을 담아 올라오는 소식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소방관, 경찰관, 그리고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CPR을 하는 모습은 거의 아비규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만큼 치열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을 그들의 간절함이 집구석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었던 나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으니 현장 상황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나기를'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 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언론 브리핑을 위해 마이크를 잡고 침착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던 용산 소방서장님의 떨리는 손. 인터뷰를 하다 이내 눈물을 참아내지 못한 인근 가게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눈물이 맺힌다. 예견된 사고였다는 말은 안타까움을 넘어 오히려 울분을 자아낸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를 탓할 상황도, 처음에 누가 밀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애도해야 할 때다.


전해지는 안타까운 소식들. 모두들 최선을 다했지만 그저 어쩔 수 없었기에. 온 힘을 다해 가슴을 누르는 손을 멈춰야만 했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 가슴이 메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들조차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그저 살려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득 생각나는 지인이 있어 연락을 해보았다. 사실 안부를 묻기 전까지도 너무나 망설였다. '혹 무슨 변고라도 생겼으면 어떡하지.' '혹 주변에 슬픈 일을 당했으면 어떡하지.' '그냥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할까.' 몇 시간을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다행이었다. 본인도 주변에도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는 소식이 어찌나 다행인지.


서로 다행이라고 마음을 위로하고 추슬렀지만 이내 우리가 내뱉는 다행이라는 이 한마디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미안함으로 다가옴을 느껴다. 우리에게 다행인 그 시간에 누군가는 절망하고 오열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추측도 난무한 것 같다. 우린 이미 세월호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나. 죽음 앞에 산 사람들의 입놀림이 얼마나 경망스러운 일이던가. 죽음 앞에 책임론을 운운하는 모습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던가. 부디 이번만큼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애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에게 주어진 지극히 평범한 하루의 삶. 매일 반복되듯 흘러가는 그 하루가 너무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삶이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죽음 앞에서 만족스럽지 못 한 그 하루조차 충분히 가치 있는 소중한 하루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말로도 무엇으로도 상실의 감정을 위로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한 편의 글에 마음을 담아 본다.

오히려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없는 내 짧은 표현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부디 작은 위로의 마음이 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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