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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Dec 19. 2022

이별을 대하는 세 가지 마음

나의 사랑과, 힘겨운 현실과, 그리고 어제의 나와의 이별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뭐라 말하려 해도 기억하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와요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 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께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을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 지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린 후

사랑의 슬픈 추억은 소리 없이 흩어져
이젠 그대 모습도 함께 나눈 사랑도
더딘 시간 속에 잊혀져 가요


- 김광석 <거리에서>
https://youtu.be/TEKkvPQlO9M


매서운 추위가 몸을 잔뜩 웅크리게 만드는 겨울의 한 복판, 몸이 시리니 괜스레 마음도 시려지는 듯한 하루에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상을 음악처럼 살아가는 DJ 알레입니다. 평상 시면 팟캐스트 <알레쓰바>에서 인사드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글로 찾아가 봅니다.


12월 19일, 월요일, 오늘의 오프닝 곡은 故김광석 님의 <거리에서>로 열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광석 님을 좋아하는데요, 목소리가 현악기의 선율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또한 강렬하게 한 줄로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을 멈춰 세우고 그 선율에 잠기게 만드는 힘이 있죠. 


이별. 솔직히 이별이라는 주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냥 슬픈 감정선을 싫어하니까. 그런데 '이별'은 '사랑'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애절한 마음에 글을 쓰게 만들고, 노래를 지어 부르게 만들고, 또 몇 날 며칠의 밤을 눈물로 지새우게 만드니 말이죠.


첫사랑의 이별 장면이 생각나요. 신기하죠.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온다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이었네요. 어쩌면, 내리는 비가, 흐릿한 하늘이 이별을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네요. 많이 좋아했었기에,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친구가 되기까지 2년이 걸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별은 누구에게나 맺힌 이슬이 되어 스미는 외로움으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살면서 가슴 시린 이별의 경험 한 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첫 곡을 띄워 보았습니다.




모두가 돌아간 자리
행복한 걸음으로 갈까
정말 바라던 꿈들을 이룬 걸까

밀렸던 숙제를 하듯
빼곡히 적힌 많은 다짐들
벌써 일어난 눈부신 해가 보여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울고

셀수록 가슴이 아픈
엄마의 늘어만 가는 주름
조금 늦어도 괜찮단 입맞춤에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또 한참을 울고
다짐을 해보고
어제 걷던 나의 흔적들은
푸르른 하늘 위로 나의 꿈을 찾아 떠나고
난 고집스런 내일 앞에 약속을 하고... 매일

한희정 <내일> 미생 OST
https://youtu.be/9rPhdh4W6rI


생각해보면 우리의 이별은 매일의 삶에 반복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제와의 이별이 있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요. 한참 드라마 미생이 세간의 이슈가 되었을 때, 저 역시 직장에서 해외 업무를 하던 신입 사원이었어요. 물론 드라마 속 주인공, 장그래처럼 처절하진 않았지만, 그가 매일 마주해야 했던 힘겨운 하루를 조금은 느껴보았던 것 같네요.


오늘의 두 번째 곡은 한희정 님이 부른 미생의 OST <내일>이었습니다.


미생이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단지 신입사원들의 고군분투가 담긴 이야기만이 아닌, 직장인, 회사원, 상사맨이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각자의 의미로 가 닿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겐 구두가 닳도록 뛰어다니던 영업사원 시절을, 다른 누군가에겐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 수주해낸 해외 프로젝트의 기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잃어버렸던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해주지 않았을까요.


드라마를 보면 늘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고된 하루 끝에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위로해주는 그런 장면. 아쉽지만 어린 시절 동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거리의 포장마차는 막상 제가 성인이 되어 갈 수 있게 된 나이가 되니 대부분 사라지고 없더군요. 느지막이 시작한 직장 생활 탓인지, 어느새 직장 문화도 달라져 포차가 아닌 맥줏집 같은 데를 가거나 아님 회식을 선호하지 않던가.


그 덕에 저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지만, 어쩐지 이 음악을 듣고 있음 지금도 자신의 자리에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며 또 하루를 떠나보내는 이 시대의 직장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어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나는
이곳에 서있네

숨을 쉴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해 보이지 않아
힘들고 괴로운 나날들이
우리를 너무 지치게 해

잃어버린 시간 다시 찾고 싶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싶어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다시 한번만 오 시작해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다시 한번만 다시 시작해

윤도현 <다시 한번>
https://youtu.be/rPJMDLwcyMQ


오늘의 마지막 곡은 윤도현 2집에 수록된 곡이죠, <다시 한번>으로 보내드립니다. 저에게 가장 떠나보내기 힘들었던 것은 어쩜 제 자신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시대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대라고 하죠. 그만큼 '나'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깊이 재조명해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해를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네요. 그 시간에는 글쓰기가 있었죠.


늘 머뭇거렸던 제 자신과의 이별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면서도 쉬이 보내지 못하는 건 그 뒤에 숨어있기 참 좋았으니까요. 나아가지 않는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하기 좋았으니까요. 전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그것을 떠나보내고 나니 이제야 알겠더군요. 나는 숨어있던 것이 아니라 점점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마지막 곡으로 띄워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와 함께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이별을 대하는 세 가지 마음이라는 주제로 오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았어요. 실제로 제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의 포맷을 잠시 빌려와 나누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어떠셨나요? 각각의 음악과 함께 글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올해 만이 아닌, 저의 지난 삶을 돌아보니 크게 세 가지 이별이 떠올랐어요. 첫사랑과의 이별, 애쓰고 견디며 살아갔던 직장생활과의 이별, 그리고 나를 오랜 시간 붙잡았던 나와의 이별. 


그러고 보니 이별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이별을 경험하는 동안 저는 이만큼 성장했고, 또 다른 만남의 설렘을 누리며 살아왔으니까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은 계속 이별을 선물해주겠죠. 이별을 선물이라고 여기니 오히려 기다려지네요. 이별이 가져다줄 새로운 시작의 선물이. 


¡Adiós mi memoria!

¡Adiós mi juventud!

¡Adiós mi pasado!


Un beso.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이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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