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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9. 2022

이별이라는 클리셰

진부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이별이란 말은 사랑만큼이나 진부하다.

남용의 결과. 빤히 의도된 힘. 새로움 없는 진부한 상투(常套), 표현, 개념.


그러하므로 '이별'은 '클리셰'라 명명해도 과함이 없다.


그러나 진부하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진부하다는 건 반복되었다는 뜻이고, 반복되었다는 건 우리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다는 뜻이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것들은 떼어내기 쉽지 않다.


이별이라는 말이 진부하지만.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이유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란 어느 노래 가사는 '이별'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는 무언가를 떠나보낼 수 없고, 내가 떠나올 수 없다. 노래는 나를 가만히 두고, 이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별은 '자의'보단 '타의'라 말하고 있다. 그 아픈 서사를, 더 아픈 멜로디에 담아서 말이다.


나이가 들 수록 더 그렇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렇다.

이별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이별은 그렇게 우리네 의사와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이별은 왜 이토록 타의적일까?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일까?


죽음이라는 큰 이별 앞에.

그것을 맞이하기 전의 이별은 자잘하다.


한 없이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도, 죽음이라는 이별에 빗댈 수 없다.

'죽도록 아픈'이란 표현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직 죽지 않은 자에게 모든 이별은, 그저 자잘한 하나의 비유와 연습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는 늘 이별이라는 클리셰에 빠져들고 있다.

진부하지만 그러할 수밖에 없다. 클리셰의 매력과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알고도 빠져드는 건 우리네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자잘한 이별에 상처받지 않기로 한다.

클리셰에 빠져든 것을 억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이별이 클리셰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진부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로 인해 만남이 보이고, 만남으로 인해 사랑이 보인다.


언젠가 이별할 모든 것들이.

오늘 내 눈앞에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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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주제는 '이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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