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이별이란 말은 사랑만큼이나 진부하다.
남용의 결과. 빤히 의도된 힘. 새로움 없는 진부한 상투(常套), 표현, 개념.
그러하므로 '이별'은 '클리셰'라 명명해도 과함이 없다.
그러나 진부하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진부하다는 건 반복되었다는 뜻이고, 반복되었다는 건 우리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다는 뜻이다.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것들은 떼어내기 쉽지 않다.
이별이라는 말이 진부하지만.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이유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란 어느 노래 가사는 '이별'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는 무언가를 떠나보낼 수 없고, 내가 떠나올 수 없다. 노래는 나를 가만히 두고, 이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별은 '자의'보단 '타의'라 말하고 있다. 그 아픈 서사를, 더 아픈 멜로디에 담아서 말이다.
나이가 들 수록 더 그렇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렇다.
이별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이별은 그렇게 우리네 의사와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이별은 왜 이토록 타의적일까?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일까?
죽음이라는 큰 이별 앞에.
그것을 맞이하기 전의 이별은 자잘하다.
한 없이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도, 죽음이라는 이별에 빗댈 수 없다.
'죽도록 아픈'이란 표현이 그것을 대변한다. 아직 죽지 않은 자에게 모든 이별은, 그저 자잘한 하나의 비유와 연습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는 늘 이별이라는 클리셰에 빠져들고 있다.
진부하지만 그러할 수밖에 없다. 클리셰의 매력과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알고도 빠져드는 건 우리네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자잘한 이별에 상처받지 않기로 한다.
클리셰에 빠져든 것을 억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이별이 클리셰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진부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별로 인해 만남이 보이고, 만남으로 인해 사랑이 보인다.
언젠가 이별할 모든 것들이.
오늘 내 눈앞에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이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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