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막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인생은 상대적이니까.
지난주, 서울에는 한파가 몰아쳤다. 일주일 내내 영하권이었고 그중에서도 영하 10도 이하로 더 내려가는 날도 있었다. 코 끝이 찡하고 귀가 빨개질 정도의 추위는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기분이었다. 수분기를 가득 머금고 내린 눈은 밤새 얼어, 제설 작업의 골든 타임을 놓친 길은 이내 빙판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신나게 빙판이 된 길 위에서 달음박질하며 미끄럼을 탔다.
주말까지 기세를 몰아치던 매서운 추위는 월요일이 되면서 좀 풀리기 시작했다. 풀렸다 해도 0도 안팎의 기온이었지만. 참 신기하게도 영하 10도 언저리의 기온의 냉기에 적응하고 났더니 오히려 0도 안팎의 기온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삶을 이렇듯 언제나 상대적이다. 그땐 틀렸던 게 지금은 맞을 수도 있고, 또 그땐 옳다고 여긴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는 법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어떻든지 그것에 대해 쉽게 결과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퇴사 후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막막함은 늘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감정이다. 이미 수차례 나의 글을 통해 쏟아 내었듯 때로는 불안감이 충만해져 덜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 순간에는 나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지나온 삶의 궤적이 모두 처참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난 지금, 촘촘하게 엉켜 있어 답이 보이지 않던 막막함의 감정에도 실마리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고, 하나씩 풀어가는 중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상처보다 나의 아픔이 늘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듯 직장생활도 그렇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누군가의 회사는, 그곳의 팀장님과 팀원들은 어쩐지 다를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마음. 그러나 결국 오십 보 백보 아닐까. 물론 다른 면이 실제로 존재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대진운도 따르는 법이니 그냥 운이 나빴네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오랜 기간 동안의 취준생 생활을 끝내고 취뽀에 성공한 20대 친구가 한 명 있다. 이 친구의 취업 소식을 들은 지도 벌써 반년이 더 지났다. 오랜만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물어봤다. "취직하니까 좋니?" 돌아온 답은 예상했던 대로다. "하하하, 그냥 다니는 거죠." 몰랐을 때라면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막상 취직하니까 참 별거 없지? 그렇게 힘들게 취업준비했지만 그에 비하면 직장 생활은 참 별거 없어.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 삶의 방향을 잘 고민해 봐. 일단 기반을 두고 있으니 안정감은 있잖아."
결국 언젠가 이 친구도 '퇴사' 버튼을 누를 날이 올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니 그게 1년이 될지 5년 10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또다시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부디 그 순간의 감정이 희망을 잃어버린 최후의 선택이 아니 길하는 것이다. 분위기에 휩싸여서도 아닌 자신의 길을 향해 내딛는 용기 있는 걸음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퇴사도 삶도 모두 막막하긴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내일을 살아본 경험이 없으니. 결국 내일에 대한 막막함은 사주도, 오늘의 운세도, 용하다는 무속인의 부적도, 무엇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삶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영원하리라는 법도 없다. 들쭉날쭉한 감정의 흐름 어딘가에 오늘이 있을 뿐이다.
퇴사 후 외형적으로 아직 성공적인 기반 다지기를 하지 못했지만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감정의 기반을 다져온 것 같다. 새 해가 된다고 당장 무언가 달라지는 것을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또다시 불안감이 휘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날엔 새 희망으로 텐션이 한 껏 올라가있을 수도 있을 테지만 이젠 중심이 전보다 더 다져져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상대적인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