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MBTI 어쩌고 하다가 이젠 에니어그램으로 넘어갔다. 최근 에니어그램 기초 강의를 듣기 시작했는데 나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은 언제든 이렇게 재밌고 흥미롭다. 이제 겨우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 번의 강의를 들었을 뿐이며, 추가적인 이해가 필요해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수준이라 깊이 있는 말은 못 하겠지만 그 와중에 내가 초, 중, 고, 개근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얕게 알고 있는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특징으로는 본능이 고착이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에서 9가지 유형을 나누는 중요한 세 가지 기준이 본능, 감정, 사고인데, 그중에 9번 유형은 본능이 왕따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더 깊이 있는 설명은 훗날을 기약하며.
본능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본능 때문에 무슨 일이든 습관화되면 일처리가 거의 자동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자동화 시스템에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즉,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된다는 뜻. 달리 말하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내가 개근을 한 이유다.
9번 유형을 표현하는 말 중에, 평화주의자, 귀차니스트가 있는데, 귀차니스트이면서 개근을 한다는 말이 매우 아이러니하고 보이겠지만, 습관적으로 등하교를 하다 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개근상을 받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지금까지 내가 성실해서인 줄 알았는데.
이 유형의 모티브로 작용하는 본능은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가령 직장인의 경우 자기 업무 외에도 회사 시스템 전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도 전체 시스템에 편승하여 자연스럽게 흘러가려는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소름. 내가 회사 다닐 때 맨날 생각했던 것이, '아, 이 회사는 대체 시스템이 왜 이래?'였던 것이 떠올랐다. 즉, 시스템이 엉망이면 나는 매우 불편을 감지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건 다른 사람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이라면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능이 불편을 느끼는 상황이라는 소리다.
뭐 아직은 이 정도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지만 조금씩 또 나를 이해해 본다. 내가 왜 그렇게 아이러니가 많은 사람처럼 보였는지, 왜 그리 부지런 떠는 귀차니스트인지 아주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것을 계기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도 좀 더 깊이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그가 품고 있는 아픔과 생각들을 알기에 더 많이 행복해졌음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는 그 길에 나른한 보조를 맞춰가며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 나의 목표는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해보는 것이다. 철학보단 심리학적 측면에서. 지금껏 그럴 것 같다고 막연히 알아오던 '나'라는 세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품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글에 담기길 바란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글이 늘 따뜻하고 포근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내 안에 풀어내야 할 감정의 슬러지가 많아 마냥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음 한다.
오늘의 글은 개근상으로 시작해서 글쓰기의 바람으로 끝나는 참 이상한 글이 되었지만, 아무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