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 글쓰기 방법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줄곧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글이 쓰이지 않는다면, 글이 쓰이지 않는다, 로 시작해 보세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채 그저 자판을 두드린다.
오늘이 글쓰기 위기인가? 위기감이 느껴지니 이 참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게 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 무엇이라도 써야 할 때, 하루를 되돌아보며 세 가지를 돌아보면 도움이 된다.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외출을 했다.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약 1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고, 평소 만나고 싶던 작가님을 만나러 갔다. 한평생 서울에서 살았지만 정작 동네 밖을 잘 나서지 않는 나에게 여전히 처음 가보는 데가 많다. 송리단길도 그중 하나다. 정확히는 송리단 길은 아니었지만 그 바로 옆, 베트남 커피숍에서 작가님을 만났다.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호기심이 생기는 대상이 있다. 어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등 인터뷰를 준비하듯 질문들을 떠올려 보지만 막상 만남이 시작되면 이러한 질문들은 다 지워진다. 그냥 그때그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질문과 답이 이어질 뿐이다.
누구를, 몇 시에, 어디서 만난다
역시 또 한 번 생각해 보지만 MBTI P형 인간의 계획은 딱 여기까지이다. 그 순간의 기분, 온도, 장소의 분위기, 그리고 상대방과 초반에 나누는 몇 마디 대화 속에 느껴지는 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부터는 막힘이 없다. 차 한 잔, 커피 한 잔을 두고 거의 3시간을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두서없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에니어그램 이야기, 가족 이야기, 독서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인간사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떠오른 핑크퐁 '아이에게'라는 노래 얘기를 하다가 순간 울컥 한 건 지나고 생각하니 좀 민망하긴 했지만 말이 잘 통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노티드 도넛 네 개, 그리고 킴스 델리 마켓에서 베이글 네 개를 사들고 왔다. 이럴 때가 아니면 먹어볼 일이 없는 것들이라, 아내와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실상은 내가 먹고 싶은 것들 한가득 사들고 돌아왔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작가님이신지라 지대넓얕 같이 툭 치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 오늘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사실 세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대한민국 토종 여우의 복원은 밀수업자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 둘째, 번데기를 통해 나방으로 변태 하는 애벌레들은 번데기 상태에 있을 때 완전한 액체 상태(단백질 스푸 상태)로 있다가 시간이 지나 성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작가님이 보기에 '나'는 충분히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역시 고질적인 문제는 그놈의 완벽주의 성향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에 복원에 난항을 겪었던 토종 여우 복원을 밀수업자가 해내다니. 그는 어쩌다 보니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되었고 그로 감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듯하다.
애벌레의 변태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번데기 속에서 완전한 액체상태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성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인 다음에서야 비로소 성체가 된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성숙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성장의 과정이 성숙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성숙은 결국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에 대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때론 남이 바라보는 내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객관적일 수 없기에. 생각보다 늘 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는 듯하다. 작가님이 책에서 본 내용을 인용하여 들려준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스스로를 부족하다, 모자라다 여기는 것 또한 다른 의미에서 오만이라고. 어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적정 수준의 건방인 듯하다.
앞의 두 가지 내용을 적어 내려 가기 위한 시작은 세 번째 질문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록에 남길 것인가.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냈을 때 특히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삶을 돌아볼 때 기록이 남겨있지 않으면 때론 내가 밀도 있게 살아왔음에도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록이 남아있을 땐 그런 착각으로 인한 자아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통해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움을 얻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그중에 사람을 통한 배움을 선호한다. 그래서 만남을 신중히 하되 만나기 위한 시간은 아끼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곧 두 개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여긴다. 다름이 뒤섞이면 묘한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곧 이해가 뒤따르며 합을 만들어 낸다. 정-반-합의 흐름에 인간에 대한 배움이 있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만남이 소중하고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뇌는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답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한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제대로 질문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언제나 질문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나처럼 무엇을 써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을 때조차 결국 글쓰기의 시작은 질문이다. '나 오늘 뭐 쓰지?'
질문에 답을 달아 내려가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여느 때와 같이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나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매일 글을 쓰다 보면 누구라도 소재의 고갈을 경험한다. 그리고 막막함의 순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글이 쓰일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 막막함으로 인해 던져지는 질문이 나로 하여금 쓰게 만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