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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돌아오는 걸까 흘러가는 걸까?

같지만 또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우리들

by 알레

'계절'이라는 단어는 저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른 듯하다. 누군가에겐 기다리면 돌아오는 시간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나에게 계절은 무엇일까? 돌아오는 걸까? 아니면 흘러가는 걸까? 무더위와 숨쉬기조차 버겁게 만드는 습한 날씨에 던질만한 질문은 아닌 듯 하지만 같은 여름도 해마다 달라지니 집 밖에 나서기 꺼려지는 요즘 시원한 집 거실에 앉아 가만히 궁리해 보기에 좋은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 표현이 참 와닿긴 하지만, 그보다 인생과 계절을 엮을 때 가장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각자의 때가 있다는 말이었다.


봄이 되면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벚꽃을 떠올려본다. 벚꽃이 순간 주목받는 밀도를 생각하면 그저 부럽다. 그러나 딱 그 순간이 지나면 벚나무는 이듬해 봄이 오기 전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무엇이 돼버린다. 오히려 버찌가 떨어진 자리는 온갖 얼룩으로 짙어져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솔직히 벚꽃이 부러운 건, 가장 먼저 빠르게 주목받기 때문이다.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는 듯 느껴질 때, 견뎌야 하는 마음의 짐은 견디기를 포기하게 만들 만큼 버겁다. '과연 피어날수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계절은 봄이고, 여름이 되어도 마음은 여전히 겨울처럼 차가워진다. 그래서 질 때 지더라도 차라리 벚꽃이었음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계절은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인데, '제철 과일, 제철 야채'라고 표현하듯 만물은 모두 '제철'이 있는 법인데, 왜 그리 나의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 힘든 걸까.'


그래서 지금 나의 계절은 무엇일까? 아직 피지 못한 듯 하니 여전히 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정작 나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재능을 찾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봉오리가 터치고 개화가 시작된 늦봄이나 초봄정도라고 봐야 하려나.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꽃이 다 화사하게 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잡초라 불리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보면 어지간해선 눈길 한 번 받기 힘들지만 그 나름 만개하고 있는 상태이니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미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아직 겨울은 아니라는 것. '아, 인생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다시 정정해 본다면, 아직 겨울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 적절하겠다.


어디쯤인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계절은 계속 변하는 중이다. 다행인 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사실이다. 아니, 겨우내 움츠린 상태로 에너지를 머금고 있어야 다시 봄에 싹을 틔울 수 있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점에 위로를 얻게 된다. 누군가에게 겨울은 '끝'이라는 의미로 다가간다면 지금의 나에게 겨울은 '시련과 연단'의 의미가 더 크다. 나를 더 단단해지게 만드는 시기.


계절은 이처럼 담고 있는 의미가 깊고 넓은 듯하다.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니, 이제는 도통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같은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나에게 계절은 돌아오는 건가, 아니면 흘러가는 걸까?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아직은 돌아오는 것의 의미가 크다. 마흔에 접어들어 이전까지의 삶을 가지치기했다. 잘려나간 부위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잘 소독하는 과정이 제법 길어졌다. 이제 다시 새 순을 틔우려 그간 응축시킨 에너지를 발산하려 하는 중이라 믿는다. 여전히 헤매는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씩 문이 열리는듯한 요즘이다. 알 수 없는 세계와의 연결을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중이다.


이제는 다시 피어날 것에 소망을 둬본다. 어떤 모양, 색, 향기를 가진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나의 계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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