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불안이 늘었다.

키는 180이지만 마음은 여린 아빠입니다.

by 알레

어느 날 밤,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내 옆에는 아내가, 그리고 그 옆에는 32개월 아들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는 그 순간이 감사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을 쏟을뻔했다.


아빠가 되고 난 뒤 가끔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며 마음이 위축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적이 되고 눈물이 많아진다던데. 고작 40대 초반을 살아가는 주제에 할 소린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10년 전의 나보다는 나이 들었으니까 전혀 영향이 없진 않겠지'하며 괜스레 나이 탓을 해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랑 함께 쇼핑몰에 가면 가끔 유난히 불안한 마음이 앞설 때가 있다. '아이가 난간에 기대어 아래쪽을 바라보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잠깐 한눈 판 사이 아이가 사라지면 어떡해야 하지?' 절대 일어나면 안 될,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무서운 상황들이 떠오르면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 유난히 이런 마음이 불쑥불쑥 생겨날 때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 '약해진 걸까?' '아니면 오히려 강해지는 중인 걸까?'


이런 나에 대해 지인께서는, '지켜야 할 존재에 대한 마음의 부담'때문일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건 부모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만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여 주셨다.


사랑이 커지는 만큼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자라는 것 같다. 아직은 세상을 모르고 제멋대로인 아들을 보고 있으면 그 천진함에 행복하면서도 행여 나하는 마음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마음이 이러니 '안돼'와 '조심해야지', '아니야'와 같이 부정어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


날이 더우면 더우니까 바깥 활동을 자제하게 되고, 미세먼지가 심할 땐 미세먼지 때문에, 추울 땐 감기 걸릴까 봐, 환절기엔 비염으로 고생할까 봐, 아이를 마치 호주머니에 넣어두듯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에만 머물게 만드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분명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걷고 뛸 때가 되면 자주 산책도 나가고 놀이터도 가겠다 생각했었는데. 나는 절대 유튜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육아를 할 거라 다짐했었는데!


결국 '아이의 건강'이라는 것을 구실 삼아 자기 계발의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아빠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반성하게 된다.


한동안은 나의 현실적인 문제에 몰두하다 보니 온종일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럴 때면 괜히 아이에게 평소보다 더 짜증을 냈다.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니 아이의 투정을 담아낼 여유가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을 아이에게 큰소리치며 쏟아냈던 적도 있었고,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고 있던 적도 많았다.


그런 날엔 아이도 유난히 잠꼬대를 더 하는 듯했다. 어떤 꿈을 꾸는지는 알 턱이 없었지만, '아니야!', '하지 마!'라고 소리치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나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에 돌아누운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빠가 미안'이라고 나직이 속삭여본다.


지나고 보니 나를 괴롭히던 삶의 문제들 중 대부분은 괴로워했던 것보다 별 것 아닌 일들이거나 당장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시간이 낭비되었음을 또한 깨달았다.


그렇게 낭비된 '오늘'은 아이가 내게 허락한 시간이기도 했다. '내 아이와 언제까지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아니, 내 아들이 언제까지 지금처럼 아빠를 친근하게 불러주고 반갑게 찾아줄까.' 생각해 볼수록 내 욕심의 크기가 지나쳤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요즘 나는 매일 같이 새벽 3-4시에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몸을 누이기 전 언제나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이 행복이 소중하게 간직되길. 다른 무엇도 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우선 하지 않기를. 나의 욕심과 절망이, 내게 허락된 이 시간을 가로채지 않기를.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이 되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야 그 소중함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