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고 마음먹은 게 언제부터인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뭔가를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한 지도 수차례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삶은 여전히 이뤄내지 못헀다. 그래서 매일이 불안하다. 불안으로 여는 아침은 불안과 함께 닫히기 마련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그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어쩌면 저들에게서 그 답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만나고 나면 깨닫게 된다. 우린 모두 불안한 삶을 살고 있구나. 어쩌면 불안은 그냥 불완전한 삶이기에 늘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을 들이마실 때 자연스럽게 불안도 함께 마셔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인지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이겨내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불안의 구름이 한 결 걷히는 기분이다.
생각해 보면 불안하기에 나아질 방법을 찾는다. 따지고 보면 지금 겪는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게 원래 부모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둥지를 짓는 과정을 거치며 흘러간다. 나 또한 부모가 되었으니 내 아이에게 지금은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겠지만 언젠가 내 아이도 자기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삶의 대전환에는 늘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불안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의 길을 걷는 모든 행동에는 불안이 더 짙게 깔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불안은 당연한 거다. 문제는 불안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줄 때 발생한다. 힘을 실어주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매일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불안은 삶을 정체하지 않도록 해주는 동력이 되어준다.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치게 만들고, 사람을 만나 질문을 하게 하며, 사색을 통해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쓰도록 종용한다.
그동안 만나본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나름의 위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플루언서이거나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는 사람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물론 고작 몇 명 만나고 짓는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은 크게 다를 게 없었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확연히 다른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불안을 딛고 한 발짝 나아가느냐 아니면 불안에 갇혀버리느냐의 차이였다. 이럴 땐 정말 글쓰기를 시작하길 잘했다 싶다. 헤매던 시간들을 기록하길 참 잘했다 싶다. 돌아보면 나는 끊임없이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기에.
어쩌면 삶은 불안의 터널을 지나야 만 다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고난뒤에 영광이 있듯 불안 뒤에 기회가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지금까지 충분히 불안했다면 이제 기회를 기대해 볼 만도 하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는 나도 나의 삶을 더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불안은 지금 내가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시그널이다. 그러니 나의 선택에 불안감이 밀려온다면 변화를 기대해 보자.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