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명절 스트레스라 하면 며느리들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고부갈등 편부터, 눈치 없는 남편 에피소드, 눈치 없는 시누이편, 시댁 친정 방문 횟수에 대한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며느리 편, 명절에 오지 말고 푹 쉬라는 센스 만점 남의 시어머니 이야기, 온 가족 여행을 떠나는 세상 부러운 남의 가족 이야기 등. 남자에게 군대이야기가 있다면 여자에겐 명절 이야기가 동등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조금, 아니 아주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나름의 명절 스트레스가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꼭 명절을 앞두고 허리 통증이 심해진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래부터 만성 허리 통증을 가지고 있어서 명절 스트레스와 연결 짓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오죽하면 아내가 그렇게 표현했을까. "여보, 여보도 남들 마냥 명절 스트레스야;?"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몸무게 16킬로를 넘어선 37개월 아들을 안고 다니면서 더 심해진 듯하다. 하도 안아줘 버릇해서 그런가 아들 녀석은 여전히 안아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군 시절 포병이었던 나는 '3보 이상 승차'라는 구호를 외치곤 했는데, 아이가 날 닮았나 보다. ‘아빠, 힘들어, 안아줘’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허리는 아프지만 또 이때 아니면 언제 안고 다닐 수 있을까 싶어 번쩍 들어 올리긴 하는데, 조심스럽긴 하다.
비단 허리통증만이 아니다. 설이 오면 나에게 허락한 신년 작심 3일 유예기간이 끝났다는 것에 긴장감이 생긴다. 새 해가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특히 작년 연말을 알차게 보낸 다음이라 올 해는 색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 살아온 습성이 어디 그리 쉽게 바뀌던가.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껏 고조되었던 상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한참 올랐을 때가 중요한 건데 한 번 흐름을 놓치고 나니 다시 이전의 편안한 삶으로 돌아가버린 기분이다.
그나마 위안 삼고 있던 게 설이었다. ‘아직 나에겐 새 해가 오지 않았다’는 그런 구차한 이유를 들며 유예기간을 구실 삼아 안도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설이 바로 내일이다. 더 이상 변명거리가 없다. 정말 정신 차려야만 한다는 마음에 긴장감이 밀려온다. 오늘따라 알 수 없는 체기까지 돌아 양 손가락을 땄다.
솔직히 명절 스트레스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보단 평상시 삶의 습관이 잘못된 탓이라는 것쯤은 알지만, 괜스레 ‘명절 스트레스’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다른 날은 괜찮을까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명절 덕에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형식은 많이 약소화 되었지만 중요한 건 이때만큼 친지 간에 술 한 잔 기울이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없기에, 손이 갈지라도, 누군가에겐 스트레스가 될지라도, 명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먹어야 할게 많은데 속은 왜 이리 답답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