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해방일지. 이미 종영된 지도 한참 지난 2년 전의 드라마를 이제야 보고 있다. 어찌 보면 극 사실주의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완성도가 높은 극 작품 같기도 한 드라마 속에 기억나는 대사 한 마디가 있다.
평범함은 모두가 욕망하는 걸 욕망할 때
평범하다고 하는 것이다.
'평범함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나를 포함하여, 퇴사 후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자신을 늘 '평범한 누구'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여 '나는 특별해질 거야!'를 외치는 듯 보였으니까.
아무리 주변에 '퍼스널 브랜딩', 'N잡', '노마드'라는 키워드를 익숙하게 내뱉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둘러 쌓여있다 해도 대한민국 전체 인구 대비 비율로 생각해 보면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미 평범함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런데 평범함을 모두가 욕망하는 걸 욕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니 다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른 길을 택했을 뿐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욕망하는 것이 같다면 결국 다시 평범한 걸까?' 하는. 그러면서 이어진 생각은, '근데 평범하면 안 되는 걸까?'였다. '어찌 생각해 보면 평범함은 매우 균형 잡힌 모습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나는?' '난 평범을 원하나? 벗어나길 원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늘 나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근데 주변에선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얘기는, '40대에 육아를 하는 아빠이면서 글을 쓰고 있고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평범하다고 볼 수 있는가?'다. 흠.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나를 평범하다 여겼던 건 특출 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평범함에 대해 무어라 정의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기준이 없었던 것 같다. 평범의 한자를 보면 평평할 평자를 쓰고 있다. 해석해 보자면 어떤 구석이든 튀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평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이쯤 되니 평범함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이젠 잘 모르겠다. 그냥 가장 큰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삶을 추구하면 그게 평범한 건지도.
사실 내가 평범함에서 벗어나고픈 이유는 단순하다.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지루함이 싫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평범하지 않으면 특별한 일이 일어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이기에 평범한 삶이라도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가장 중요했음을 깨달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별해 보여도 자신의 삶을 지극히 평범하다 여기면 그 삶은 평범한 삶이 된다. 같은 사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법이다. 제 아무리 여행이어도 1년에 한 번 여행을 가는 사람과 일상이 여행인 사람에겐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듯이.
그래서 결론은 나의 오늘을 평범하게 만드는 것도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나 하기 나름이라는 것. 남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남다른 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특출 난 재능이 없어도 만약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나 자신을 특별하게 봐줄 주 있는 마음이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