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시간을 보니 오늘은 오늘 안에 글쓰기는 이미 글러버린 듯하다. 이렇게 매일 글쓰기 챌린지는 끝이 나고 마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건 오래 전의 나이고, 지금은 그냥 쓰기를 멈추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긴다. 이제는 ‘매일’이라는 강박적 틀에서 꽤 자유로워진 듯하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강박적 틀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특히 당장 어떤 보상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글쓰기처럼. 만족 지연에 해당되는 것들의 공통점은 언제든 타협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습관의 리셋이 쉽게 일어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내가 깨달은 건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명확한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유연함. 글을 쓰는 이유야 숱하게 기록했고, 그렇다. 지금 난 유연함을 발휘하는 중이다. 나 자신에게.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습관'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안에 습관에 대한 정의가 루티너에 가깝기 때문이다. 짜인 계획에 따라 어긋남도 한치 정도만 허용될 만큼 계획을 지켜내는 사람 또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겐 루티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입에서 내뱉어졌을 때 전혀 어색함이 없는 단어가 바로 '습관'이다. 그러니 나와는 무척 거리가 멀 수밖에.
그럼에도 가끔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스스로 명분을 삼는 건 딱 한 가지다. 꾸준함. 꾸준함도 넓은 의미에서 습관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삶은 늘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내가 단거리 선수는 아니다 보니 조금은 나를 위한 핑계이고 합리화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긍정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긴 호흡으로 삶을 바라보면 의외로 우린 참 꾸준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좋은 습관은 좋은 습관대로, 안 좋은 습관은 또 안 좋은 습관대로 참 꾸준히도 간직하고 살아간다.
글 쓰는 것 하나는 그래도 확실한 좋은 습관으로 만든 것 같긴 한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무엇이든 마감이 임박해서 일처리를 서두르는 습관, 이성보단 감정에 휘둘리는 습관, 습관적으로 내뱉는 귀찮음까지. 여기에 생각의 습관까지 더하면 나 자신이 너무 습관으로 똘똘 뭉친 인간으로 보여 인간미가 너무 없어 보일까 봐 그건 생략하려 한다. 아무튼.
앞서 말했듯 과거의 나라면, 그래봐야 2-3년 전이지만, 미련할 정도로 성실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융통성이 없어 보일 만큼. 그 덕에 고삐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버린 게 이 정도지만. 그 시간을 거치며 느낀 건 유연함 없는 성실은 자기만족만 채우는 이기적인 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아이를 돌보느라 아내는 체력이 바닥이 되어가는 상황에도 나는 오늘 하루 글쓰기 인증을 위해 방 안에 앉아 있는다던가.
아무리 서로가 이해해 준다 해도 살면서 깨달았다. 아닌 건 아닌 것이란 걸. 특히 가정에선 더욱.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 오후엔 두통으로 낮잠을 잤긴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엔 대부분 가족을 위해 시간을 썼다. 그러다 보니 자정이 넘어서야 오늘의 글을 쓴다. 이전 같았음 어떻게든 중간에 방에 들어가 앉았을 테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더 나의 시간을 썼다. 그 덕분에 아이의 웃음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그 덕분에 아내랑 둘이 앉아 드라마를 한 편 봤다.
습관도 좋고, 꾸준함도 좋은데, 그전에 그것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습관은 그다음이다. 글쓰기도 그다음이다. 습관에 대하여 자기만의 강박의 틀에 갇혀있다면 부디 유연함을 끌어올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숨은 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