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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r 07. 2024

스벅에서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는 이유

오늘도 스벅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기가 막힌 건 또 날이 흐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땐 그저 바람만 부는 정도였는데. 지난번에 쓴 날이 흐릴 때 스벅에 갑니다라는 글 때문인지, 마치 가수들의 삶이 노래 제목이나 가사를 따라간다는 말처럼 오늘도 날이 궂다. 아니 오늘은 좀 얄궂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분명 구름이 끼긴 했지만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스타벅스에 가기 시작한 건 이미 20년 전쯤 인 것 같다. 대학생 때부터 스벅에 앉아 공부했으니까. 처음엔 아메리카노뿐만 아니라 아이스 캐러멜 마끼아또도 즐겨 마셨다. 카페 모카를 주문하는 날엔 휘핑크림을 산처럼 쌓아 마셨다. 그땐 달달한 것도 참 즐겼는데. 


이제는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푸치노가 전부다. 시럽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난 뒤의 텁텁함이 싫어진 지 오래다. 그랬는데, 오늘은 무심코 새로 나온 음료를 주문했다. 슈크림 라테. 거기에 소금빵까지. 이유는 그저 별을 두 개 준다길래. 쓰고 보니 참 단순해서 민망하다. 덕분에 당 충전은 확실히 했다.  


요즘 스벅을 이용하는 소소한 재미에 빠졌다. 사이렌 오더. 이 또한 쓸까 말까 고민했다. 남들은 다 쓰는 걸 이제야 사용하기 시작한 거라. 1월에 속초에서 만난 친구가 매장에서 굳이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는 걸 보고 아니 대체 왜 매장에서 이걸로 주문하는 거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편리해서 쓴다길래 그땐 참 희한하다 싶었는데. 불과 두 달 사이, 내가 그러고 있다. 이래서 세상일은 누구도 모르는 거다.


내가 사이렌 오더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 간편해서. 굳이 매대 앞에 줄을 설 필요도 없고, 괜히 음료 이름 잘못 말할까 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게다가 카드를 꺼내거나 적립을 위해 바코드를 열고 닫는 번거로움도 없다. 간혹 적립을 위해 스벅 앱을 열면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아 로그인을 다시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그냥 적립을 포기했었다. 사이렌 오더는 이 모든 번거로움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나는 몇 번 고객님으로 불리지 않는다. 정신을 딴 데 두고 살기 시작한 뒤로 이 간단한 주문 번호 두 자리도 깜빡하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래서 영수증을 내내 손에 쥐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내 이름으로 불러준다. '알레 고객님,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이 얼마나 다정한 목소리인가. 


나는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다. 이름은 곧 고유한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물론 그렇다고 '알레'가 내 본명은 아니지만. 이젠 본명 못지않게 많이 불리는 이름이 되었으니. 어쩌면 내 본명 보다도 더 많이,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이니 이 또한 고유한 나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카페로 출근하는 목요일. 오늘도 날은 흐리고, 분명 어제까지 포근했던 날씨는 세찬 바람과 함께 어깨를 웅크리게 만들지만 따뜻한 커피 두 잔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하루는 꽤나 만족스럽다. 커피가 두 잔인건, 슈크림 라테를 마시고 나서 도저히 텁텁함을 견딜 수 없어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더 마시는 중이다. 덕분에 오늘 별 3개 쌓았다. 야호. 그래봐야 다 내 돈 내산이지만. 


카페 라이팅 연재를 시작하고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뭐 다른 날에도 카페에 갈 수 있지만 괜스레 목요일에는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연재 브런치북 제목을 카페 라이팅이라고 해놓고 집에서 쓰면 왠지 사기꾼이 된 기분이랄까. 덕분에 일주일에 하루는 집이 아닌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니 이것도 나름의 재미 요소다.


다음엔 또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은 다음 주 목요일에 해봐야겠다. 




매주 목요일에 카페로 출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3년째 백수라서 불안하지만 3년째 자유인이라서 일상에 치이지 않으며 아이와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3년째 잘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럼에도 이제는 저도 바랍니다. 올 해는 뭔 일이라도 일어나길. 아마 연재를 끝내는 날이 그날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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