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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r 08. 2024

오늘 딱 내 숨만큼만 살자

'딱 네 숨만큼만 해라.' 이 한 마디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구독하고 있는 윤소정 대표님의 <생각 구독>에 소개된 문장인데, 주로 선배 해녀들이 이제 막 해녀 일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한다. 이미 들어 알고 있었는데, <생각 구독>에 소개된 내용은 그동안 내가 알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지금껏 이해한 건 '욕심부리지 말아라'라는 것이었다. 해녀 일이라는 게 욕심을 부리다간 까딱 잘못될 수 있는 일이니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당부의 의미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간 의미는 달리 표현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녀들도 상급, 중급, 하급에 따라 숨을 참고 들어갈 수 있는 수심이 달라진다고 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하급 해녀가 상급 해녀의 깊이까지 들어갔다간 몸이 견디질 못할 것이다. 그러니 '딱 네 숨만큼만'이라는 건 지금 너의 수준을 정확히 알라는 소리고 굳이 남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부족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다. 


지금의 나는 내 숨만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작년보다는 알고 있다'이다. 작년 말까지 그렇게 남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그땐 정말 내 숨이 그에 미치지 못함이 우울해질 만큼 싫었으니까.


자기를 아는 건 왜 늘 숙제처럼 남아있는 기분일까. 대체 얼마나 더 살아야 좀 알 수 있는 건지. 나이 50이 되면 알려나? 60이 되면? 70이 되면? 답답하긴 한데 한편으론 이 질문이 남아있기에 살아간다는 생각도 해본다. 살아보지 않은 나이대의 나는 계속 미지의 세계니까. 알기 위해선 살아봐야 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숙제가 아니라 반딧불인 것 같기도 하다. 조용히 세심하게 살펴야만 보일 것 같고, 어쩐지 그 빛을 따라가면 뭐가 있을 것 같으니까.


사실 나를 안다는 게 짜장 짬뽕 사이에 택일하는 문제는 아니기에 복합적이고 다변한 존재를 무슨 수로 명료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싶다. 그저 상황에 따라 나는 대체로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일 듯하다. 그리고 그 경험이 축적될수록 점점 뚜렷한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자신이 모호하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가끔은 하루를 일부러 빡빡하게 보낼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엔 완전 다 풀어헤치고 느슨해질 때도 있다. 상반된 두 종류의 하루를 반복해 보면 내가 어떤 삶에 더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이 가득한 삶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지 아니면 유유자적한 삶에서 만족을 느끼는지. 해보니 알겠더라. 나는 틈이 없는 삶에선 잔뜩 예민해지는 사람이란 걸. 근데 늘 그런 삶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게 내 숨을 몰랐던 지난날의 나라는 걸 고백해 본다. 


얼마 전 TV에서 '사회부과 완벽주의자'에 대해 본 기억이 난다. 실상 내면은 완벽주의가 아닌데 주변의 기대로 인해 겉모습만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과 실제 삶의 간극이 만들어낸 호흡곤란으로 나다운 삶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오른 한 계단 보다 남이 오른 두 계단이 대단해 보이고, 똑같이 한 계단 올라도 나보다 더 빨리 오른 사람에게 조급해지는 삶. 도무지 나를 바라볼 수 없는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내가 그런 시간에 갇혀 있었다는 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내 숨을 알기 위해선 결국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내 숨을 아는 건 주량을 아는 것과 같다. 소주 두 병을 마셔본 경험이 있다한들 다음날 속이 뒤집어지고 하루 종일 활동 불능상태로 보냈다면 과연 주량을 소주 두 병이라고 말하는 게 합당할까? 저질러 보고 엎어져봐야 알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그냥 맘껏 내질러 보자. 어른들 말씀처럼 인생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새로운 것에, 낯선 삶에 머뭇거리지 말자.


다른 누구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님아. 너부터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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