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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r 21. 2024

어쩌다 보니 스벅 출근러가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이제 좀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특정 공간과 시간의 흐름이 나의 삶과 동시에 흐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그렇다. 요즘 거의 매일 스타벅스에 출근하듯 하는 나의 일상이 <스타벅스 일기>라는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일상과 맞닿는 기분이라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낀다. 연배도 다르고 시간대도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 내가 바라보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피식 거린다. 


책을 읽던 중 '나도 스타벅스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가 이내 접었다. 생각해 보니 이미 매주 목요일에 쓰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 행사 덕분에 9시까지 등원을 시켰더니 아침이 여유롭다. 오후에 정해진 일정이 있어 간단하게 요기만 해결하고 출근했다. 물론 오늘도 어김없이 스벅이다. 이젠 장소를 빼고 의례 '출근'했다고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직장인들이 매일 어디로 출근한다고 굳이 장소를 지칭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알듯, 어느새 나에게 출근은 스벅에 간다는 자연스러운 의미가 되었다. 


늘 가던 시간과 다른 시간. 카페의 풍경은 또 색다르다. 오전이라 그런가 오후와 달리 잔잔한 생기가 느껴진다. 둘셋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분들도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기분 탓이겠지만 아메리카노의 맛조차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 아침은 이런 거구나. 좋네.' 그냥 기분이 좋다.


창 하나를 두고 느껴지는 안과밖의 온도차처럼 생각의 흐름도 평소와 사뭇 다르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아침은 그 자체로 미라클 한 것 같다. 새벽 4시든 오전 10시 30분이든. 밤 사이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올라온 해처럼 컨디션도 기분 좋게 올라가는 중이다.


요즘 창작의 샘이 말라버린 듯한 기분을 느낀다. 도통 오지 않는 영감님을 고대하며, 대체 사람들은 영감을 어디서 얻는 걸까 궁금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책 속에서 머리를 '띵-' 하게 만드는 한 문장을 만났다. 


영감은 온갖 데서 얻습니다.

장강명 저 <책 한번 써봅시다>


'온갖 데서라니. 하. 너무하는 거 아냐?' 순간 얄미웠다. '아니, 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야?' 잠시 삐쭉거렸는데, 곱씹어 볼수록 반박할 게 없었다. 심지어 나도 줄곧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일상'은 그야말로 영감의 보고이며, 그런 '일상'에서 영감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게 글쓰기의 선물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정작 저 한 마디에 마음이 삐뚤어지다니. 영감을 바랄게 아니라 통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걸 깨닫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사소하고 소소한 삶을 달리 보지 못한 나를 반성하다던 중에 또 질문이 올라온다. 


'아니, 근데 통찰은 또 어떻게 얻어지는 건데?' 아놔.


이 질문에 대해 같은 책에서 저자는 또 명쾌하게 답을 준다. 


모든 영감은 다 불완전한 형태로 온다.
그걸 완성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할 말 없음.) 


책을 읽으며 이렇게 할 말이 없던 적이 있었나? 이런 게 통찰이구나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님도 아마 나와 같은 질문을 머금고 보냈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다. 근데 겪어보니 불완전한 형태로 찾아오는 영감을 제련하여 반짝이는 걸로 만들어 내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뭐 대단한 창작자도 아니지만, 그런 나조차도 때론 흘러가는 시간 위에 누워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묵묵히 오늘 하루치를 써 내려가는 사람. 불완전 하지만 꾸역꾸역 완성해내는 사람. 그게 작가라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허리가 곧게 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결국 오늘도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영감은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것이라고. 


어제는 꾸역꾸역 힘겹게 글을 썼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시원한 기분이 들어 다행이다. 역시, 돌고 돌아 답은 아침인 건가? 어쩌다 나에게 가장 난제가 되어버린 아침 시간. 참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숙제다. 과연 풀어낼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오늘은 오후 반차를 쓰고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야겠다. 스타벅스 출근러의 삶도 뭐 나쁘지 않은것 같다.




매주 목요일에 카페로 출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3년째 백수라서 불안하지만 3년째 자유인이라서 일상에 치이지 않으며 아이와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3년째 잘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럼에도 이제는 저도 바랍니다. 올 해는 뭔 일이라도 일어나길. 아마 연재를 끝내는 날이 그날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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