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연례행사처럼 교회 화단을 가꾼다. 작디작은 화단이라 둘이서 1시간이면 뚝딱 작업이 끝난다. 오늘이 그날이다. 아내와 오랜만에 집 근처 화원을 찾아갔다. 봄 꽃이 화사하게 피어 듬성듬성 꽃 향기가 나는 곳.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그런가, 보통 봄에 화원을 찾아가면 더 많은 꽃들이 가득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따라 유달리 자리가 비어 보였다. 뭐, 장사가 잘 돼서 이미 많이 빠진 거라고 생각하자.
오늘의 선택은 데이지 2종과 연보라색 페르시아. 흰색, 진분홍색, 그리고 연보라. 3색 구성으로 각 구역에 식재 작업을 했다. 화단 장식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물을 주는 시간이다. 물멍이라고 해야 할까. 어질러진 화단 주변의 흙이 쓸려 내려가는 모습이 좋다. 시원한 물줄기도 좋다. 그 순간만큼은 꽃도 화단도 모두 생기를 얻는 기분이다.
화단을 가꾼 지도 벌써 5년이 넘은 듯싶다. 잔재주도 재주라고, 원예 회사에 근무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분갈이와 식물을 다루는 방법이 이렇듯 참 쓸모 있어 다행이다.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건 여전히 곤욕스럽지만, 작은 손길로 가꿔진 화단을 바라보면 그저 행복하다. '올봄에도 꿀벌들이 날아오겠지?' '아이들이 꽃을 보며 좋아하겠지?'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서서 구경하다 가시겠지?'
살아보니 행복은 거창함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서 찾아왔다.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는 것들, 당연히 주어지는 거라 여겼던 것들이 모두 나의 일상을 받쳐주는 지지대였음을 깨닫는다.
길을 가다가 걸음을 멈춰 굳이 올려다보는 하늘과 봄의 색으로 수놓은 꽃나무들. 건물에 드나들 때 뒤따라 오는 사람이 없는 줄 알면서도 굳이 문을 붙잡고 뒤를 돌아보는 마음.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굳이 나에게 건네는 응원의 한 마디. 오늘 하루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잔뜩 짜증이 났어도 아이를 보면 굳이 평소 보다 더 밝게 지어보는 미소.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소중한 것들이란 걸 새삼 떠올려 본다.
이럴 땐 참 인생의 성공이 별 건가 싶다. 건강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돈이 많아 풍요로우면 좋겠지만 돈 많고 마음이 빈곤한 것 보다야 삶은 곤해도 마음이 풍요로우면 오히려 그 삶이 더 충만한 삶일 것이다.
작은 재주라도 삶을 가치롭게 만들 수 있다면 돈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감사한 일이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세상의 거대한 흐름은 언제나 우하향 하는 듯하다. 여태 단 한 번도 좋아진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일시적인 것 빼고. 호황기도 있었지만 언제나 뉴스의 흐름은 불황으로 수렴했던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 하루하루 행복을 쌓아간다는 건 어쩌면 자기 최면으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작디작은 것들을 눈에 담기 전까지는.
화단을 가꾸며 다시 그 마음을 되새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잠시 놓치고 살았던 소소한 것들의 가치를 붙잡아 본다. 삶은 매일 고민거리를 던진다. 오늘 하루는 잔뜩 찡그리고 괴로워할지라도 한 발 물러서 바라본 우리의 삶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지 않을까.
세상에 풀리지 않는 건 없다고 믿는다. 풀고 싶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한숨만 멈춰보자. 잔뜩 찡그리고 있다면 '굳이' 하늘이라도 올려다보자. 끝을 모르는 하늘 아래 오늘의 괴로움은 한낱 괴로움에 그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