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어떤 원리가 작동하는 걸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그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정도면 어느 정도의 인연일까? 인연의 인과에는 대체로 어떠한 교집합이 있기 마련인데 우연이라기엔 참 너무도 우연 같은 만남이 생에 두 번이나 일어난 걸까?
그 첫 번째는 동갑내기 아이를 둔 집과의 만남이었다. 아빠들끼리 SNS에서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시작된 인연이었고 우연찮은 기회로 같은 시기에 제주에 있으면서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집과는 여행도 함께 가고 아이들 문화센터도 같이 보낼 만큼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번 가족 여행 중에 일어났다. 2박 3일의 일정동안 한 집을 4번이나 마주친다면 뭐 인연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처음엔 리조트 안에 있는 키즈카페에서였다. 평일이고 성수기도 아니었기에 키즈카페는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그래도 같은 시간대에 몇 집이 함께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집과 연결될 운명이었나 보다. 우연히 트램펄린에서 만난 아이들끼리 급 친해지는 게 시작이었다. 아니, 친해졌다 보단 같이 놀았다는 게 적절할 것 같다.
17개월 아이와 4살 아이의 만남이 지켜보던 엄마들의 대화의 물꼬를 텄고 이윽고 서로 졸졸 쫓아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내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가서 안기 지를 않나. 남들이 보면 오래 알고 지내던 두 집이 함께 놀러 온 줄 착각할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때가 처음 만났던 순간이었다.
두 번째 만남은 이튿날 물놀이장에서였다. 안 그래도 전날 헤어지면서 서로 내일의 일정은 물놀이라는 건 확인했다. 그러나 그 집은 아침에 간다고 해서 만나긴 어렵겠다 싶었다. 우린 대체로 아침이 늦으니. 역시나 우리가 물놀이장에 간 시간은 11시가 넘어서였다. 이번에도 한산한 공간에서 전세 낸 것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이 좋아 야외 온수 풀에서 놀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익숙한 가족이 있던 게 아닌가. 그 집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때부터 그 집의 첫째인 6살 누나와 우리 집 4살 아들은 서로 튜브를 타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가 넘도록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고 했다. 남다른 체력을 가진 가족이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 우리가 먼저 나왔는데, 아이와 씻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먼저 쉬러 나갔던 그 집 아빠를 또 마주쳤다. 이제는 서로 그저 신기할 뿐이다.
같은 날 저녁 저녁을 먹고 돌아와 커피 쿠폰을 사용하러 로비에 내려왔다. 아내가 커피를 주문하는 중 아이와 나는 테라스에 나가 달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커피를 마시려고 다시 카페로 들어가는데 아내가 앉은자리 뒤편에 그분들이 앉아 계시는 걸 보았다. 소름. 세 번째 만남이었다.
잠깐의 만남동안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그 집도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월요일부터 2박 3일 여행을 온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동선이 겹치는 것도 모자라 여행의 일정과 구성원도 맞춘 듯 하니 말이다.
헤어지기 전 혹시 다음날 조식을 먹을 계획이 있느냐는 말에 우린 조식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연한 만남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인연은 4번째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차에 짐을 다 싣고 아직 남아있던 커피 쿠폰을 사용하러 아내가 로비에 간 게 마지막 연결 고리였다. 마침 그곳에 그분들도 계셨던 것이다.
그제야 그분들은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으며 잠깐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휴가 중 반은 친정에서 반은 시댁에서 보내고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자며 엄마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보스턴에도 꼭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4번의 인연과는 작별을 나눴다.
돌아본 내 삶에는 삶의 어떤 순간마다 귀한 인연들을 만났던 것 같다. 회사에 취업할 때 나는 서류가 아닌 사람을 통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순간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퇴사 후에도 혼자 헤맬 때마다, 감정기복을 경험하며 침체될 때마다 함께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이제 내 인생의 중요한 단어이고 방향키이다. 아직 어떻게 풀어낼지 모호 하지만 그러나 하나씩 시도해 보는 중이다.
앞으로의 삶에선 어떤 인연들과 만나게 될까 기대된다. 아무래도 내 인생은 소위 '정석'이라고 불리는 길보다는 약간 곁길로 향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곳엔 항상 준비된 인연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그 인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