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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30. 2024

뭐든 애매하면 일단 그냥 해보기를 선택하자

오늘 아침,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 전쟁을 한 판 벌이고 났더니 온몸에 검은 기운이 하늘에 닿을 만큼 강하게 이글거림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간단하게 집을 정리했다. 원래 검은 기운은 가만히 있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에너지마저 다 태워버리기에 일단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는 당장의 내면을 통제하기에 가장 쉬우면서 효과 있는 행동이다.


깊은숨을 골라 쉬듯 청소를 하며 우선 마음을 차분히 한 뒤 집을 나섰다. 산책을 나서면 더 좋겠지만, 산책까지 할 여력은 없어 카페까지 걸어가는 가는 걸 택했다. 


하필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곧 들이닥칠 폭풍 같은 소란을 알기에 오늘은 일찍이 이어폰 볼륨을 최고로 했다. 음악은 무조건 센 걸로. 이럴 땐 역시 록이 최고다. 오랜만에 Mr. Big의 96년도 앨범을 틀었는데 한참 이 앨범에 푹 빠져 지냈던 그때의 전율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좋았어. 이만하면 검은 기운은 모두 사라진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 작업을 시작해 볼까?'

'근데, 검은 기운이 사라지니 이상하게 몰입감이 떨어지는 건 왜일까?'


오만 잡다한 생각이 사그라들 무렵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아뿔싸.' 너무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틀었나 보다. 카페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되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음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묶으며 주변을 살피니 이미 직장인들도 많이 돌아간 뒤였다.


그러고 보니 매주 목요일에 <오늘도 카페 라이팅> 연재를 시작한 지도 벌써 13회 차에 접어들었다. 요즘 계속 되뇌는 말인데 '일단 그냥 시작하기'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브런치북 연재도 '해야지 해야지를' 고민만 수개월하다 어느 날 참 뜬금없이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13주나 이어지고 있다. 이럴 거면 그냥 진작 할걸 그랬다. 뭘 그리 망설였는지. 


최근 같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다. '그동안 내가 돈을 벌지 못한 건 게을러서였어!'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다 걷어내고 났더니 진짜 이유는 딱 이거 하나가 남았더라는 소리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났던 작가님도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비슷한 답을 하셨다. '알레 님이 책을 쓰지 못하는 건 아직 책을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 중에 쉽게, 별 무리 없이 시작하는 것과 조금이라도 마찰이 일어나는 행동을 살펴보면 나의 호불호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도, 돈벌이는 좋은데 그전에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좋아하지 않아 계속 시작을 미룬다. 그냥 혼자 쓰는 글은 좋아서 쓰지만 일로서 쓰는 글은 자꾸 그 앞에 딴짓이 새치기를 한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던 이유도 연재 북 이미지와 소개글을 쓰는 게 귀찮아서였다. 이 별것 아닌 것으로도 수개월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요즘 나는 나에게 계속 테스트를 하는 게 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해 보는 것. 선택의 기준을 밖이 아닌 내 안에 두는 것.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야 실상은 그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고민해 보니 유유자적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가 온전히 나로서 선택해도 괜찮은 삶을 느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게 남들의 눈에는 '대체 왜?'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더라도.


뭐 당분간은 삶이 좀 뒤죽박죽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이게 가장 나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카페에서 작업하니 좋긴 좋다. 그러고 보니 이번주는 혼자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을 갖는 게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이마저도 곧 끝날 예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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