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레 Jun 26. 2024

아이가 변기에 응가를 했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밤. 역사적인 날을 기록하지 않았다니!


아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변기에 응가를 했다. 마침 6월 22일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니 이 날은 더욱 기억하기 쉽겠다. 그나저나, 이 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응가데이?' '첫 똥 기념일?' 흠... 뭐가 되었든 어째 쫌 더럽다는 생각에 일단 여기에서는 그만하는 걸로.


최근 아이는 기적적으로 팬티 입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첫 번째 고비가 왔고 결국 다시 기저귀로 돌아갔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건 개월수가 차이나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팬티를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년 차이나는 동생조차도.


어린이집에서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꼭 팬티 입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40개월이 되도록 여태 의지가 없는 아이를 대체 무슨 수로 꼬실까 고민했는데, 아이가 선뜻 팬티를 입겠다고 했던 것이다. 앞 뒤 맥락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정작 팬티를 입기 시작하니 대소변이 문제였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을 알아채는데 아직 어색했던 아이는 여러 번 바지에 실수를 했다. 소변보다 문제였던 건 팬티를 입은 뒤로 아이는 대변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밤 기저귀로 갈아입히면 그제야 대변을 보곤 했다. 어떤 날은 3일간 대변을 보지 않더니 자면서 할 때도 있었다.


몇 번을 슬그머니 꼬셔 봤지만 아이는 계속 거절했다. 그때마다 참고 또 참았다가 변을 보는 게 안쓰러웠는데 이 날따라 아이는 살포시 의지를 내 비치는 게 아닌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변기를 세팅하고 아이를 앉혔다. 부끄럽지 않도록 아내와 나는 문을 닫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유튜브 베베핀 채널에서 화면 캡쳐한 이미지


닫힌 문 너머 마치 멀리서 누군가 신음하는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응~!'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목구멍으로 겨우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 뒤에 맑고 청아한 '퐁당' 소리가 들리지 않던가! '해냈다!' 해냈다!!!!' 그 순간 전율이 올라왔다. 내 아이가 변기에서 눈 첫 똥의 감격이 이렇게 짜릿한 것이었다니! 


"아들, 다 쌌어?"

"응, 다했어."


문을 열고 들어간 화장실. '향긋한 X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피어올랐지만 그 보다 또다시 한 단계 나아간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행여나 아이가 민망해할까 싶어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호들갑을 떨며 아이를 칭찬해 줬다. 아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 첫 똥 뒤처리의 영광은 아내에게 양보했다. 미안 여보. 


대체 똥 눈 게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감격스러워 하나 싶다가도 아빠가 되니 아이의 첫 순간은 어떤 것이든 이렇게 감격스러운 것임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이가 변기에 응가 하기를 바랐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응가 기저귀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 봉투를 베란다에 내놨는데 여름이 되니 점점 숙성되어 바람을 타고 솔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견뎌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집에도 기저귀를 버릴일이 없어지겠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든 날들은 다 처음인데 늘 같은 날을 반복한다는 생각으로 첫 순간의 감격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아이의 첫 경험과 40대 어른이 처음 맞이하는 '내일'은 체감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두 번째는 대체 언제 하려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화장실에 가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지금, 두 번째 감동의 순간을 경험했다. 야호! 아들 만세!


매거진의 이전글 낮잠이 늦잠이 되는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