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요일 밤. 역사적인 날을 기록하지 않았다니!
아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변기에 응가를 했다. 마침 6월 22일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니 이 날은 더욱 기억하기 쉽겠다. 그나저나, 이 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응가데이?' '첫 똥 기념일?' 흠... 뭐가 되었든 어째 쫌 더럽다는 생각에 일단 여기에서는 그만하는 걸로.
최근 아이는 기적적으로 팬티 입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첫 번째 고비가 왔고 결국 다시 기저귀로 돌아갔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건 개월수가 차이나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팬티를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년 차이나는 동생조차도.
어린이집에서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꼭 팬티 입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40개월이 되도록 여태 의지가 없는 아이를 대체 무슨 수로 꼬실까 고민했는데, 아이가 선뜻 팬티를 입겠다고 했던 것이다. 앞 뒤 맥락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정작 팬티를 입기 시작하니 대소변이 문제였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을 알아채는데 아직 어색했던 아이는 여러 번 바지에 실수를 했다. 소변보다 문제였던 건 팬티를 입은 뒤로 아이는 대변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밤 기저귀로 갈아입히면 그제야 대변을 보곤 했다. 어떤 날은 3일간 대변을 보지 않더니 자면서 할 때도 있었다.
몇 번을 슬그머니 꼬셔 봤지만 아이는 계속 거절했다. 그때마다 참고 또 참았다가 변을 보는 게 안쓰러웠는데 이 날따라 아이는 살포시 의지를 내 비치는 게 아닌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변기를 세팅하고 아이를 앉혔다. 부끄럽지 않도록 아내와 나는 문을 닫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닫힌 문 너머 마치 멀리서 누군가 신음하는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응~!'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목구멍으로 겨우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 뒤에 맑고 청아한 '퐁당' 소리가 들리지 않던가! '해냈다!' 해냈다!!!!' 그 순간 전율이 올라왔다. 내 아이가 변기에서 눈 첫 똥의 감격이 이렇게 짜릿한 것이었다니!
"아들, 다 쌌어?"
"응, 다했어."
문을 열고 들어간 화장실. '향긋한 X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피어올랐지만 그 보다 또다시 한 단계 나아간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행여나 아이가 민망해할까 싶어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호들갑을 떨며 아이를 칭찬해 줬다. 아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 첫 똥 뒤처리의 영광은 아내에게 양보했다. 미안 여보.
대체 똥 눈 게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감격스러워 하나 싶다가도 아빠가 되니 아이의 첫 순간은 어떤 것이든 이렇게 감격스러운 것임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이가 변기에 응가 하기를 바랐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응가 기저귀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 봉투를 베란다에 내놨는데 여름이 되니 점점 숙성되어 바람을 타고 솔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견뎌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집에도 기저귀를 버릴일이 없어지겠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든 날들은 다 처음인데 늘 같은 날을 반복한다는 생각으로 첫 순간의 감격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아이의 첫 경험과 40대 어른이 처음 맞이하는 '내일'은 체감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두 번째는 대체 언제 하려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화장실에 가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지금, 두 번째 감동의 순간을 경험했다. 야호! 아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