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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11. 2024

제철 행복이 주는 오늘의 재발견

'제철 행복'은 김신지 작가님의 책 제목이다. '행복' 앞에 '제철'을 붙이니 의미가 더 도드라진다. 내가 운영 중인 몹쓸 글쓰기 모임에서는 매일 아침 글감에 어울리는 글귀를 공유해 준다. 오늘의 글귀는 '제철 행복'에서 인용한 내용이었다. 


제철 식재료에는 영양소가 더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위해선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제철이 있다. 단, 식재료와 다르게 매일 맞이하는 '오늘'이 제철이다. 


지금껏 나는 쉽게 행복을 미루는 선택을 하며 살았다. 원하는 삶에 이르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지만 오늘의 행복을 잠시 미루는 것이 더 큰 행복을 위해 마땅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정작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겠다. 아이에겐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밤, 각각이 제 나름 행복한 순간이다. 울다가도 금방 웃을 수 있는 건 감정의 모드 전환이 그만큼 빠르다는 뜻일 테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순간을 솔직하게 누릴 수 있다.


아이를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니 지나가버린 과거의 순간에 미련을 두고, 오지 않은 내일의 불안을 그토록 부여잡아가며 숱한 오늘을 희생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써놓고 보니 '내가 이 정도였구나'하는 생각에 참 안쓰럽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차라리 다행인 듯하다.


드넓은 바다 앞에서 누군가는 지금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동 반사처럼 뛰어든다. 그에게 바다는 온몸을 적셔도, 짠내가 온몸에 감돌아도 행복감을 더하는 이벤트 같은 존재일 테다. 반면 모래가 몸에 덕지덕지 붙는 것과 짠내가 싫은 나는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날이 흐려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옷이 없어서, 놀고 난 다음 뒤처리가 골치 아파서. 등등.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결국 행복의 모먼트는 제각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똑같은 바다여도 누군가는 뛰어들어야 행복을 느낄 때 다른 누군가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듯, 자기만의 행복 요소를 계속 발견하고 쌓아가는 게 제철 행복을 누리는 자세이지 않을까.


행복에는 크기가 없다. 어쩌다 보니 '작은' 행복, '소소한' 행복이라는 표현을 입버릇처럼 쓰고 있었다. 과연 그렇다면 '큰' 행복, '소소하지 않은' 행복은 어떤 순간인 걸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참 쓸데없는데 습관적 겸손한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구태여 행복에까지 크기를 매기며 살았다니. 참내.


나는 오늘도 나만의 제철 행복을 누리는 중이다. 아이가 '헬로 카봇'에 푹 빠져있는 동안 책을 펼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과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여유.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남은 하루는 제철 육아로 계속 행복 모먼트를 이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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