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보통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물리적 거리 제약으로 인해 서서히 멀어져 가는 상황에 쓰인다. 그러나 비단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표현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8월 말부터 짤막한 가족 여행을 매주 이어가고 있다. 2박 3일 속초, 2박 3일 제주, 그리고 5박 6일 다시 강원도 고성. 약 2주간 여행 일정이 이어지다 보니 삶의 숙제에서 몸이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짐을 느낀다. 자꾸 느슨해지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가족 여행 중에 온통 일 생각에만 몰두해 있을 수는 없고, 그저 사람 마음이 참 이렇듯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잘도 움직인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도 글쓰기만큼은 빼먹지 않고 있어 다행이다.
서울을 떠나오니 시간이 평소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거실에서 뒹굴뒹굴 거리는 아이의 모습과 창 너머 보이는 바다 풍경에서 지금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과분한 여유마저 느껴진다.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 같은 생경한 아침 풍경에 잠시 넋을 놓게 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을 폈다. 생각해 보면 집중하는데 딱히 장소를 가릴 필요가 없는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데 굳이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며 '여기선 되고 저기선 잘 안 돼'라는 생각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껏 여행은 여행, 일상은 일상 구분했는데 이번에는 둘을 적절하게 섞어 여행 중이라도 일상의 루틴을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첫 번째 실천계획으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려 했으나, 나의 의지는 계획과 달리 나를 침대에 반듯하게 두었다. 장거리 운전과 잠자리가 바뀐 탓에 피로감이 평소보다 누적된 이유였다.
그래도 아주 잠깐이지만 동이 트는 동해 바다의 풍경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요즘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다. 내면의 비판자에게서 벗어나 충분한 가능성을, 성취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효능감을 계속 주입시키고 있다. 덕분에 계획과 다르게 아침 루틴을 지켜내지 못했을지라도 나를 비판하거나 상황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지 않고 오늘의 여유와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사할 수 있었다.
코칭을 받은 후 확실히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여전히 들끓는 호기심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경향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에 주파수를 계속 맞추고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순간 기가 죽었다가도 저들의 기운을 끌어당기며 다시 에너지를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꾼다.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달라지는 건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선택하기만 하면 가능한 것 같다. 물론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숱한 시행착오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결과만 보면 크게 어렵지 않은걸 왜 그리 어렵게 생각하며 살았나 싶을 정도니까.
여행은 아직 3일 남았다. 평소와 같은 아침 루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책 한 페이지, 글 한 편이라도 이어가 보기로 계획을 수정해 본다. 비록 몸이 멀어져도 마음마저 멀어질 이유는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노마드의 삶에 마음이 멀어져도 몸은 멀어질 새가 어디 있겠나. 항시 노트북을 들고 다니니까.
완급조절. 문득 떠오르는 표현이다. 지금 난 완급조절 중이다. 생각의 잔가지를 쳐내며 오롯이 나의 원씽에 집중하기 위한 조절의 시간. 몸과 마음이 같은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을 통해 한 걸음만큼의 성장을 계속 이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