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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20. 2024

나다운 삶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비가 내리는 금요일이다. 직장이었다면 벌써 퇴근길 교통체증부터 떠올라 너무 싫었을 것 같은데,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며 들었던 생각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냥 비 내리는 금요일'이었다.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머물러 있는 상황에 따라 해석이 극명하게 갈리는 걸 보면서 슬몃 그런 생각도 든다. '사람이 객관적일 수 있는 존재일까?'라는.


비 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산을 타닥타닥 두드리는 빗소리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한가롭게 걷는 길이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겨우 10분 남짓이었지만 짧은 시간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오늘은 지인의 오디오 콘텐츠 게스트로 출연을 했다. 내 프로그램이 아닌 게스트로 출연해 보는 건 또 처음인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싶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다. 거의 1시간 30분가량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나왔다. 진행자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쨌든 재밌는 시간이었다.


문득 '나는 왜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가는 걸 좋아할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처음에야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오랜 백수생활 중에 뭐라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효능감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현재는 조금 달라졌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조금 민망하지만, 스튜디오의 성능 좋은 마이크를 타고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가 좋기 때문이다. 


코칭 이후 확실히 달라진 건 내가 나에게 있는 재능을 인정해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세상의 쓸모'가 기준이 돼버린 탓에 내가 무엇을 가진 사람인지 모르거나 알았다고 해도 쓸모없다 여기며 살아가기 쉽다. 


바로 이 지점이 나다운 삶을 왜곡시키는 지점이다. 재능이 돈이 되어야만 쓸모를 갖는다는 신념이 자리 잡힌 채 살아가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지난 수년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러한 신념이 생기는 순간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눈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탁월한 무엇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보지 못해 점점 무뎌지는 슬픈 일까지 발생한다. 


나의 목소리를 좋아하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한 번이라도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 둘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해주니 속는 셈 치고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 


물론 나는 성우도, 배우도 아니다. 목소리를 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처럼 발성이나 발음 연습이 되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굳이 인정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하나의 재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는 셈 치고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내게 주어진 것들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나 자신을 배제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대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몸에는 오감이 존재한다. 5가지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그만큼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매일 시간에 쫓기고, 불안감과 조급함에 절어 감각의 문을 닫고 사는데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산을 펴고 밖에 나가 10분만 가만히 서있어 보자. 그리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빗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그러면서 내 마음의 변화를 느껴보는 거다. 


가끔은 멈춰 서서 나를 느끼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내가 가진 것들이 달리 보이게 될 거고 그것들이 곧 나다운 삶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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