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는 오직 실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에게 염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마법 지팡이가 있지 않는 한 행동 없는 변화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염력과 마법을 부릴 줄 알아도 주문을 외우는 행함이 필요하다. 실행을 막아서는 건 두려움과 게으름이다. 두려움은 곧 행동한 뒤에 오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는 것이고, 게으름은 당장 행동해야 할 이유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다.
두려움이 원인이라면 해결책은 행동을 작게 쪼개는 것이다. 뒷감당이 가능할 크기로 아주 잘게 쪼개어 단계별로 완료해 나가면 목표했던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게으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왜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고 적어보는 방법이 있다.
하루에도 두려움과 게으름은 공존한다. 어떤 것은 두려워서 주저하고, 다른 어떤 것은 게을러서 미루기를 반복한다.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인한 실행의 부재에는 감정이 따른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게으름 때문인지 이유가 딱 떠오르기보다 불편한 감정 반응을 먼저 느꼈다. 그것을 거꾸로 추적해 보니 결국 둘 중 하나가 원인이었음을 알았다.
즉, 반복해서 계획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기 전에 먼저 내 감정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감정은 꽤 많은 힌트를 건넨다. 가장 솔직하고 숨길 수 없는 반응을 드러내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자기감정을 아는 것에 탁월하지 않다. 감정을 숨기거나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라 배워온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감정도 근육처럼 뭉치면 아프다. 제때 풀어주지 않으면 단단하게 굳어 점점 무감각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터질 시한폭탄으로 남는다.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때론 울분으로, 때론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어떤 날엔 감사와 환희로 글을 써 내려가는 시간은 곧 응어리진 감정을 만져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난 3년간의 글 쓰는 시간 덕분에 나와 꽤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는 감각이 민감해졌음을 느낀다.
덕분에 이제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비교적 쉬워졌다. 나의 망설임이 두려움인지 게으름인지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삶의 미세조정이 가능해졌다. 무의미한 행동을 삼가고 지금 집중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난 하루에도 지키지도 못할 만큼의 계획을 꾹꾹 눌러 담는 사람이었다. 한가득 채워진 할 일 목록만으로 마치 내가 하루를 꽤 알차게 살아가는 사람인 듯 착각하고 살았다. 애석하게도 '3년'이라는 시간은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나는 그저 분주한 척, 뭐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뒤에 나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숨겼을 뿐이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하루에 공백이 많아졌다. To-Do 리스트를 작성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읽고 쓰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나니 이 두 가지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온오프라인에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SNS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삶의 변화는 결국 실행으로 가능하다. 목적지를 향한 실행은 방향성을 가지며 군더더기를 소거해 낼 수 있게 만든다. 하루가 여전히 겉도는 느낌이라면 오늘의 실행을 되짚어 보자. 그것들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점검해 보자. 목적지로 향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지워 버리자. 어쩌면 하루에 한 두 가지만으로도 버거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자.
소거해 낸 계획으로 하루에 공백이 생기더라도 불안해하지 말자. 그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으로 활용하면 된다. 냉정하게 딱 오늘치 내가 할 수 있는 실행만으로 계획을 세워 보는 거다. 효능감이 쌓이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결국 실행이 어렵지 않은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