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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의 족적으로 새로운 나를 그리다

by 알레

뭘 하든 하나라도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타고나기를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던 건지, 아니면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빚어낸 증상인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장통을 거닐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호기심 덕분에 '찍먹'수준의 재능이 많아졌다.


글을 쓰고, 사진 촬영도 하고, 보정도 하고, AI로 이미지를 만들 줄 알고, 음악도 만들 수 있고, 영상도 만들 수 있고 편집도 할 줄 안다. 할 줄은 아는데 딱 '해 본 적은 있어요'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딱히 어디다 내놓지 못할 것 같다.


솔직한 마음은 불안감이 빚어낸 불안증세라고 여겼다. 이것저것 일단 다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거 찔끔, 저거 찔끔하는 게 영 답답했다. 그런데 이 자잘한 재능들이 모이니 콘텐츠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지금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마저 생겨나 다양한 레퍼런스를 찾아다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4년 전 퇴사를 할 때 가졌던 생각은 마음껏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꽤 오래도록 익숙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굳이 회사 밖의 삶을 선택했으면서 생각의 방식은 여전히 직장에 머물러 성과를 내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신을 채근하며 살았다.


양파 껍질처럼 나를 켜켜이 둘러쌓고 있던 해묵은 습관들을 하나 둘 벗겨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아프기도 많이 아팠다. 그중에 아마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생각은 이거였던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지?' 못난 생각이 꽉 들어찰 때면 다능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혹 현재로부터 도피하고 싶기 때문인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와 깨닫는 건, 가까이에선 알 수 없었던 종잡을 수 없는 삶의 족적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새로운 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론 문제로부터 도망치듯 했던 그 선택마저도 밑그림의 한 획으로 남아있었다.


요즘 다능인으로 사는 재미를 톡톡 느끼는 중이다. AI로 쇼츠 영상을 만들다 보니 그간의 잡기가 한 데 모여 재기가 되었고 하나 둘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마다 오히려 삶의 용기를 얻는다. 가까운 지인의 이거 왜 하냐는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의 끌림을 따라 살아도 괜찮다'는 경험을 나에게 허용해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같은 마음이었음에도 선택의 기로에선 언제나 내 마음과 함께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꽤 많은 마음들이 나중으로 밀렸고 그 나중은 시간이 지나도 늘 나중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1년 전의 나였다면, 이거 왜 하는 거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우선 마음이 움츠러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내가 나를 찔러댔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 헛짓거리 같아 보이는 이 행동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믿는다. 뭐든 선택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앞으로의 내 삶을 지금과 다른 속도로 이끌어갈 것을 믿는다.


글을 쓰며 새삼 깨닫는 건, 인생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땅인지 늪인지도 모르고 발버둥 쳤던 시간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듯 보냈던 하루하루도, 다양한 기술을 찍먹 하듯 경험했던 나날들이 모두 나다움의 문을 열어주는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경로에서 벗어나봐야 새로운 길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처럼 삶도 그런 것 같다. 마음껏 방황하는 시간 없이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몸소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니 부디 '모범생', '착한 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나다운 삶을 과감하게 선택해 보자.


당신이 지나온 삶의 모든 경험은 새로운 당신을 그려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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