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아이 유치원 방학이 시작된다. 비상! 그럼 오늘 몇 가지 일은 무조건 끝내야겠다.'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렸다. 유치원 방학. 아이에겐 신나는 시간이지만 나에겐 나의 작업을 이어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진짜 이게 뭔데 이렇게 사람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단 말인가.
바쁘다. 아니 바빠야만 하는 오늘 하루여야 하는데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만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왜 이리 힘든 걸까. 노트북을 펴고 이것저것 콘텐츠를 찾아보는데 마음은 계속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있다. '왜 이러지?' '오늘 왜 이리 마음이 가라앉는 걸까?' 답답한 속을 들여다보았다.
몇 가지 추정되는 원인을 발견했다. 첫째, 수면 상태 불량. 다이어트를 시작한 뒤로 꾸준히 하고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최근 두 달간 나의 취침 시간은 새벽 3시-4시 사이. 그리고 기상은 8시-9시 사이다. 몸이 개운할리가 없다. 안 그래도 날이 더워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여름의 한 복판에 있는데 수면 상태도 엉망이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두 번째 원인은 허기짐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에도 점심 한 끼는 대충 때우거나 걸렀는데 체중 감량 이후 평상시에도 이전보다 에너지 레벨이 떨어진 상태로 있다 보니 오늘처럼 피로누적으로 컨디션이 가라앉을 땐 더욱 허기짐이 크게 다가온다. '배고프다'는 느낌보단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라는 느낌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요 근래 끝나지 않는 교회의 골치 아픈 일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항상 추측이 난무한다.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 모두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추측을 한다. 좋을 때야 사실에 긍정적인 추측이 더해져 미덕이 생성되지만 반대의 경우엔 감정의 골이 깊어지도록 만든다. 하필 후자의 경우라 영 골치가 아프다. 지금 교회에 20년이 넘게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보는지라 가까운 사람들은 깊은 피로감과 우울감을 겪고 있다.
세 번째 원인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최선을 다해 스위치를 꺼버리는 게 상책이다.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며 세 걸음 물러서야겠다고 결정했다. 어쨌거나 오늘을 살아야 하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가볍게 끼니를 해결했다. 입맛 없는 여름엔 매콤 달콤한 비빔면이 또 일품이다. 바로 한 개 끓이는 동안 닭가슴살도 한 팩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매콤함에 담백함을 곁들여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하다. 뒷정리를 마치고 난 뒤 소파에 기대어 잠깐 쪽 잠을 잤다. 항상 그렇지만, 10분만 눈 감고 있어야지 하지만 눈을 뜨면 최소 30분이 지나있다. 마음은 더 자고 싶지만 그랬다간 후회 막심할게 뻔하니 얼른 일어났다.
두 가지를 해결하니 컨디션이 꽤 회복된 기분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30분. 2시간 정도 뒤면 아이 하원 시간이다. 집을 나서자니 오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머뭇거리게 된다. 머뭇거리는 나 자신을 보니 이렇게 또 시간만 낭비하는 듯하여 그냥 집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숨 쉬기 힘든 더운 공기가 얼굴을 때린다. '그냥 들어갈까?' 잠깐동안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오늘 같은 날엔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게 상책이란 걸 알기에 걸음을 옮겼다.
안타깝지만 자주 가던 카페는 이미 만석이다.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앉기엔 영 눈치 없는 행동 같아 보여 그냥 밖으로 나왔다. 다시 걸음을 옮겨 또 다른 카페로 갔다. 자리를 잡고 달달한 음료를 한 잔 주문했다. 빨대를 통해 입 안을 거쳐 목구멍을 통과해 식도를 타고 배 속으로 내려가는 시원한 달달함에 눈이 번쩍 뜨인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을 메뉴를 선택함으로써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자아내는 충격과 환희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가끔은 극강의 단 맛을 경험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겠다 싶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가라앉아버린 감정에 휘둘려 날려버린 시간이 무척 아깝기도 하지만 그보단 그럼에도 몸을 일으켜 배를 채우고 쪽 잠을 선택한 나 자신을 더 칭찬해 주기로 했다. 비록 카페를 찾아가는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리긴 했지만 그 덕분에 산책을 했고 덕분에 마음이 회복되었으니 이 또한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잘 한 건 달달한 아이스 바닐라빈 라테를 주문한 것이다. 덕분에 답답한 속이 시원해졌고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절대적인 시간은 많지 않지만 밀도를 높이면 계획했던 일들을 못할 것도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이 가라앉을 땐 달달한 바닐라빈 라테 한 잔을 마시자. 속이 시끄러울 땐 평소에 하지 않던 선택을 해보자. 전에 없던 새로운 기분이 나를 감싸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