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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긴 연휴를 앞두고 숨 고르기

by 알레

10월 3일 개천절. 금요일의 빨간 날과 주말을 지나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어지는 추석 연휴. 이후 외롭게 홀로 남은 10월 10일 금요일까지 휴가를 사용하면 11일, 12일 주말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곧 시작된다. "아싸라비야 깐따삐야!" 5년 전만 해도 쾌재를 불렀을 텐데, 지금은 좀 심정이 복잡하다.


"이 길고 긴 연휴 동안 아이랑 뭘 해야 하나..."


여행을 가려해도 극성수기에 준하는 금액으로 책정된 여행지 물가는 함부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만든다. 직장인이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갈 텐데, 프리워커로 살아가는 지금 굳이 울면서 겨자를 먹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뭐라도 해야 하기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건 이 기간 동안 루틴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소모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즐겁고 좋지만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성장을 위해 홀로 머무르는 시간이 최소화된다는 것이 일편 달갑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학교를 다닐 때나 직장인일 땐 평일과 구분되는 다른 날들이 모두 이벤트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일상의 변주를 만들어내는 보너스 같은 날들에 흥분되었고 부지런히 뭐라도 하고 싶어 안달 났던 탓에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소진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일상의 변주로 인해 루틴이 깨지는 것에 불편감을 느끼다 보니 '보너스'를 얻는 게 아니라 '침투'를 당하는 기분이다. 그만큼 삶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자극에 둔감해진 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한 편으론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시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나를 존중하는 방법'에서 '내 심리적, 물리적 경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있는데, 누구라도 그 경계를 함부로 깰 수 없음을 나 스스로 인정해 줌으로써 자기 존중감을 높인다는 의미다. 평소라면 이것을 지켜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휴일엔 어쩔 수 없이 경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 경계가 중요하다 한들 아빠로서 아들의 침투를 당해낼 수가 있을까.


"다른 사람의 기준과 요구에 내 행복을 걸지 않는 삶,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삶 말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느냐의 문제며, 내면의 힘과 독립성에 대한 표시다."
- 마티아스 뇔케,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아침에 글쓰기 모임에서 받은 메시지에 실려있는 글귀가 유독 와닿았다.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떤 시간을 보낼지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야 말로 진정 나를 존중해 주는 삶이며 소모되지 않는 삶이지 않을까 싶었다. 글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누구에게라도 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다. 그것 또한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때 기꺼이 그 시간을 나다운 행복한 시간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는 행동의 결과는 같아도 마음은 전혀 다르다. 같은 이벤트여도 끌려가는 삶은 '침투'라면, 주체적인 삶은 '보너스'다. 이왕이면 '보너스'를 얻는 선택을 하는 게 더 현명한 태도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다운 삶에 집중할수록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되며, 질문을 곱씹을수록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결국 나답게 산다는 건 내 삶을 주도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자기 선언이고 동시에 실천인 셈이다.


모르긴 몰라도 벌써부터 명절 전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것 같다. 한 번쯤은 나다운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내 마음이 손해보지 않는 절충안을 잘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30분은 무조건 독서를 하겠다'라던가, '아침 7시-9시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겠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안될 거라고 지레 선을 긋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최소한 시도는 해보자. 가족과의 시간도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나'와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존중해 주는 태도. 그것만 지속할 수 있다면 적어도 소모된다는 기분에서 벗어나 전에 없던 즐거운 연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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