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6년차 회사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다. 입사 1,2년 차 때만해도 얼마나 패기있게 곧 퇴사하리라 다짐했었는지... 고생해서 회사 들어가서 왜 퇴사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외국에 유학도 가고 싶었고,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는 것. 이게 인생의 종착지는 아니길 바랬었다. 그 이상의 재밌는 삶을 상상해봤던 시절이 있었다. 고생을 해도 젊을 때 하며 배울 것이라고 다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 이년 지나다보니 어느새 달달이 들어오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이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회사를 나갈 수도 없어졌다. 몇 천이라는 돈을 쓰기는 쉬워도 모으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생각했던 다양한 젊은 시절에 해보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 유학을 갔다오면 돈이 몇 천, 아니 억 단위가 들지도 모르는데.. 학위를 받는게 모아논 돈을 다 탕진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아니 우선 영어 점수도 없으니 공부부터 해야하는데... 학원비도 장난아니지... 사업을 해볼까? 지금 다니는 회사를 나가서 자영업을 했다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 잘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재취업도 힘들겠지? 요즘 취업이 안되서 주변에 내 또래인데도 아직 취업 못한 아이들도 수두룩하니까... '
나는 점점 현실을 마주하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저울질하며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에 짖눌린다. 그러다보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뭘 꼭 해야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회사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미치도록 공허하고 불안했다. 아마도.. 자아 성취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보니 성취라는 단어가 참으로 낯설다. 내가 회사에 들어와 보낸 5년 간, 나는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드믈었다.
애초에 들어오면서부터 회사에서의 '성취감'에 대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우리 회사의 올드한 디자인 스타일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은 디자이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저 위의 높으신 분들의 취향이라는 것을. 애플이나 무지처럼 간결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했던 나는 다소 화려하고 올드하며 남성적인 우리 회사 디자인 스타일에 맞추는 것이 버거웠다. 그리고 어쩌다 회사 스타일대로 디자인을 해서 출시를 해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어짜피 아무도 내 디자인 때문에 이 물건을 살 것 같진 않았으니까.
결국은 높은 사람들의 뜻대로 결정되어버리는 디자인. 정치싸움으로 갈리는 회사 안에서의 성적표.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잘 된다고 해도 단 일말의 보람도 성취감도 없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무 영혼이 없이 디자인했기 때문이겠다. 단지 이렇게 달달이 들어오는 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 자신을, 회사를 좀 먹으며 버티고 버틸 뿐이었다.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한 채,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 자신이 영 한심했다. 나는 대기업 디자이너가 된 이후에 계속 제자리였고, 그 제자리가 무서웠다. 에라이 될대로 되버려라. 일단 영어 점수라도 따놓고 뭐라도 결정하자. 이런 마음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불러온 마음의 병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강박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가 제일 마음이 편했다. 이 순간은 나아지고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조금씩 무언가 성취하고 있다는 희열을 느꼈다.
욕구 피라미드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의식주가 해결된 뒤에는 사랑을 얻거나 사회의 소속감을 얻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그 다음엔 존경을 받고자하는 욕구, 그다음에 자아 성취의 욕구를 가진다고 한다. 모든 욕구의 종단에 있는 자아 성취의 욕구. 그래서일까.. 어릴 때는 자아 성취라고 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태면 유명한 디자이너가 된다거나,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남기는 것.. 하지만 요즘들어 깨달은 것은 나는 그런 거창한 것을 성취했느냐 안 했느냐에 집중하기 보다 그 날 뭔가 나아졌다는 소소한 성취감으로부터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영어공부를 하는 행위가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강박으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영어 공부를 매일 함으로써 나혼자 제자리라는 무서움과 공포감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소소한 성취감으로부터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늘 성과 압박 속에서 경쟁하다보니 단기간에 1등을 차지하고 점수를 따내는 것만이 좋은 성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그런 것을 내려놓고 조금씩 과정을 즐기며 천천히 이뤄가는 것도 충분히 자아 실현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왜인지 이 공부의 끝을 보기가 싫어진다. 어느새 유학을 가겠다는 목적은 사라졌고, 배움의 성취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