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최근,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하여 계속 고민하고 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무언가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정한 목표였다. 하지만 돈을 못 벌게 된다는 것도 무섭고, 괜한 도전을 했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렵다. 어제는 유난히 이런 생각이 나를 미친 듯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안일하게 지내던 몇 년의 세월이 나를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아픈 머리를 쥐어 잡고 디자인 관련 해외 대학원의 입학 전형과 수업료 등을 미친 듯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체적으로 찾고 정리할수록 정말 유학을 가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은 사라져 갔다. 돈을 겨우 어느 정도 모았는데 유학을 갔다 오면 이 돈은 다 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실 돈이 아깝지는 않다. 돈이라는 것은 모아놓고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가치 있는 곳에 쓰라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한 것들에 쉽게 큰돈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유학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만약 얻는 것이 학위뿐이고 결국은 한국에 돌아와서 같은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큰 기회비용이 아닌가..?
돈을 떠나서도, 회사로 돌아오는 것 말고 내가 결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리가 안된다. 학위를 따고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은 걸까?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건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려서 내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하는 나는 지금 불행한가.. 아니면 단지 일상이 지루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일까... 나에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꺾임 없이 나아가는 친구가 한 명 있다.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 그 확신에 찬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저 자신감, 저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sky캐슬 김주영 선생님이 혜나에게 물었듯 묻고 싶어 진다.
“넌 두려운 게 없니...?”
문득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깨달은 것이 나는 늘 쉽게 쉽게 수동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공부를 하라고 하니까 하고, 남들이 대학을 가니까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이 취업하니까 취업을 하고. 진로를 정할 때도, 친구가 같이 미술학원 가서 시험 쳐보자는 말에 훅 이끌려 갔다가 디자인이라는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회사의 경우도 당시 친했던 선배가 추천한 대학생 프로그램을 우연히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입사까지 이어졌다. 내가 능동적으로 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보지 않아서일까? 나는 또다시 우연한 제안, 만남 같은 외부에서의 새로운 자극을 기다리고 있다. 용감한 내 친구와는 달리 겁쟁이인 나 같은 사람이 어떤 결정을 단호히 내리기에는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이 없이는 꽃가루를 날릴 수 없는 식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