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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Apr 04. 2019

소중한 것과 이별한다는 것

감정의 소거


우리는 모두 살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소중한 것들과 이별을 한다. 나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이별을 줄곳 연습해 왔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생 때부터 나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했다. 토요일 귀갓길에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들러 두어 마리 살 돈을 손에 꼭 쥐고 달려 나갔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병아리들은 오래 살기 힘들기 때문에 팔린다는 것을 알았다. 병아리들은 며칠을 채 못 버티고 죽곤 했다. 심지어 메추라기는 하루도 못 가서 죽곤 했다. 별다른 방도 없이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내 앞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찔끔이며 앞 산에 싸늘한 동물의 사채를 묻어주곤 했다. 이름을 지어주며 상상했던 다채로운 미래는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묻히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사람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별이든 모든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것에 대하여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소멸.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럼 끝을 연습해온 나는 모든 것을 무던하게 받아들여왔는가? 소소한 이별에는 대부분 무던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물론, 이런 사실을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2003년 7월 14일.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무수한 생각이 흘러갔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나는 엄마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정하기 못했기에 모른 척 해왔다. 엄마가 재산을 아빠와 우리 앞으로 명의를 이전하며 정리하고 있을 때도, 엄마가 너는 왜 친구와의 시간을 줄이고 엄마와 더 시간을 같이 보내주지 않냐고 화를 낼 때도, 엄마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평소의 평범한 여느 중학교 3학년의 사춘기 여자 아이처럼. 나까지 호들갑 떨어 버리면 정말로 엄마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고,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랍게도 나는 그런 태도를 거의 10년이 흐른 뒤 까지도 유지했었다. 계속해서 어쩌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별 탈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하게.


그 모든 평범함이 회피였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나 자신까지 속일 정도로 그 슬픔의 감정은 내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맹새코 나는 밝은 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나는 나의 슬픔을 느낄 수 없었기에 밝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은 마치 슬픔이라는 감정이 마비가 된 것처럼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날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감정선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해볼 정도로 나는 무던했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렇게 꽁꽁 싸매여 있던 슬픔도 나이가 들자 이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라. 문득 막다른 곳에서 사무치게 힘이 들 때는 몸의 어떤 부분에 그런 많은 눈물이 고여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끝없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찾곤 했다.


최근, 나는 또 한 번 이별을 하였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한 남자와. 햇수로 4년을 만난 것 치고는 꽤나 아무 일 없는 듯 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여느 때처럼 회사를 나가고, 친구를 만나서 웃고 떠들고, 강아지와 침대에 누워 웹툰을 즐긴다.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는 일상을 살아낸다. 평범한 일상을 이별의 아픔과 공허함으로 헝클어트리지 않는다. 그게 나를 버티게 해 준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아픔과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버거운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저 이유도 모른 채 감정을 음소거시켜놓고 몸만 재생되고 있는 상태로 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사랑에도, 인생에도, 몇 천년을 뜨고 지던 태양도 언젠가는 죽은 별이 될 것이다.

그저 이 스치는 생명에, 사랑에, 순간에 온 마음을 다해 본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은 이별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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