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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Jul 25. 2019

비혼이 만연하는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 것

결코 사랑의 결실 같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나는 올해로 29살이다. 27살 무렵에는 30살이 되면 결혼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았고, 28살에 이르자 그 당시에 옆에 있던 남자 친구와 결혼하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그 상상은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철없는 소녀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막연한 미래를 통제해보고자 시뮬레이션 돌린 수많은 가능성들 - 해외 유학, 해외 취업, 이직 혹은 퇴사 후 창업.. 등등 - 중 하나가 결혼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인간인가 보다. 결혼조차 인생의 흐름에 내던져 버렸다.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뵙고 있었고, 상견례 날짜가 오가고 있었다. 그 낯선 결혼이라는 길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오던 길로 되돌아 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에, 달콤한 사랑의 결실을 바라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결혼이 해피앤딩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쯤은 요즘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나는 될 수 있는 한 결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간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인터넷 세상에서 읽어보기 시작하였고, 놀랄만치 끝도 없는 안 좋은 후기들을 읽으며 점차 나는 극도로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시댁과의 갈등, 결혼 후에 변한 배우자, 외도, 게임 중독자 남편, 아이로 갈등을 하는 부부, 재산 문제로 돌아선 부부, 이혼 가정, 사별한 가정, 가정 폭력 등... 행복한 자들은 말이 없기 때문인 걸까? 행복하다는 말보다는 불만과 후회의 글들이 넘쳐났다. 과연 이 세상에는 행복한 가정이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한 자료들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전 남자 친구의 가족과의 갈등으로 결혼 준비를 중단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글들이 과장이 아님을 몸소 체험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었다. 잘 된 것은 아들 덕분이요, 안 좋은 것들은 내 탓이 되는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그 가족들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평생 볼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상견례 날짜를 잡기 전에 나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일까. 결혼 제도에도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애초에 100세 시대인 요즘 70년을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왜 한 집에서 꾸역꾸역 서로를 맞추며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 구시대적인 발명품을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 걸까? 결혼 제도는 결국 개인의 행복을 위했다기보다는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 아닐까..?


프랑스나 캐나다 등 서구사회의 결혼의 의미는 지금 우리나라와는 또 사뭇 느낌이 다르다. 동거와 자녀 양육, 사랑, 결혼.. 좀 더 각각의 문제로 나뉘어서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동거는 하되 결혼은 하지 않기도 하고, 각자 애인이 있지만 자식 문제에 있어선 같이 애쓰기도 한다. 무조건 서구의 문화가 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꼭 지금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더 불안정한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결혼 만족도나 출산율은 더 높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결혼 제도의 제일 큰 단점은 한 번의 결정에 너무 큰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변심은 꽤나 쉽게 일어난다. 하루 이틀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 변심을 죄악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도 마음에 안 들면 퇴사하거나 이직할 수 있고, 학교도 전학을 가고 전공도 바꾼다. 동시에 전공을 여러 개 들어보기도 한다. 심지어 연애도 자유롭게 헤어짐을 얘기할 수 있는데... 변하는 것이 좋다 안 좋다고 이분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경험이 밑거름 되어 발전도 있고 성숙한 인생이 되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유독 결혼 후의 변심은 위법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물론 첫 단추에 얼떨결에 답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일도 한 직장에서, 사랑도 첫사랑과, 전공도 외골수로 한 가지에 올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약 안 그런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어릴 적 판단 미스로 결혼을 해버렸다면? 막상 결혼을 해보니 내가 생각한 배우자가 아니라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는 것인가. 이미 결혼했으니까. 도장 찍었으니? 물론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혼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 또한 쉬운 길이 아님을 알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보류하며 참고 또 참으며 사는 것일 것이다. ( 물론 최근엔 이혼을 흠 안 잡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홍콩 영화 ‘첨밀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소군과 이요의 사랑에 돌을 던지기보다는 그들의 재회를 가슴 아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첨밀밀은 어찌 보면 불륜 이야기다. 소군은 이요를 사랑하면서도 '의리' 혹은 '가정을 이루고 싶은 꿈' 때문에 연인이었던 소정과 결혼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소정과 헤어진다. 물론 남겨진 사람인 소정은 아프고 슬픈 시간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도 함께하지 않는 나무토막 같은 남편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혼자의 슬픔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일, 공부, 친구.. 대부분은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는 게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특권 아닌가? 사람 마음은 도장을 찍는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닌데. 변할 마음은 변해버리고 말 텐데..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할까.


흔히 결혼이 사랑의 결실인 것처럼 얘기되지만 나는 배우자와의 감정은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이나 연민, 정, 가족애 같은 다른 가치로 변하는 경우가 더 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물론 천생연분처럼 평생 연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부부도 있지만 소수라고 생각한다. 돈이나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맘 한편에 조금은 연인처럼 사랑하며 살기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에는 대가가 따른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정말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화목한 가정이 있다면 그건 각 개인이 가족이라는 단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스치는 사랑의 감정을. 때론 우정을. 때론 사회적으로 나를 뽐낼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따지면 결혼은 뭘 더 얻게 해 준다기보다는 가치의 교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일부를 내어주고 새로운 가치들을 얻는 것이니까.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뭘까.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행복을 얻긴 하는 걸까. 연애 끝에 결혼을 하는 커플들 모두 그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평생 함께이고 싶을 뿐일 텐데. 이것은 너무나 이루기 힘든 꿈이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외치는 것 같다. 비혼 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시대. 무엇이 그들을 비혼 주의자로 내몬 것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다만 아마도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너무 많은 정보들이 결혼 후의 고통을 증명한다. 요즘 세대는 단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은 것이다. 결혼을 함으로써 내어줘야 하는 가치들- 이를 테면 자유. 사랑. 우정. 열정. -은 결코 안정감과 소속감보다 하찮은 가치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결혼 후에 내어줘야만 하는 저 가치들을 그리워하고 찾게 된다. 바람을 피우고, 일을 더 중요시 여기고, 사회생활을 한다며 밖으로 돌기 시작한다. 모든 가치를 누리면서 결혼 생활도 하고 싶다면 욕심인 것일까?


개인적 견해로 나에게 결혼은 실패한 사회의 시스템이다. 수많은 안 좋은 결과가 주변에 널렸다. 그럼에도 결혼하는 사람들은 보통 비이성적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다를 것이라는 자만 어린 환상. 혹은 어떤 상황이든 극복해 보리라는 근거 없는 용기. 그도 아니면 이 사람 아니면 죽어버릴 것 같다는 불타는 사랑. 아님 차라리 사람을 이용해 재산을 축적하고 싶은 광기 어린 욕심. 하지만 진짜로 결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저런 감정적인 형태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결혼을 하려는 자의 마음가짐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고행길을 걷는 수도승의 마음과 가까워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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