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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Jun 21. 2020

예기치 못한 변화라는 것

'코로나'는 예기치 못했기에 혁명의 씨앗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혁명이 변화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변화가 혁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에릭 호퍼 <혁명의 씨앗>


코로나라는 변화가 세상을 마비시키고 혁명의 씨앗을 뿌린 지 넉넉히 잡아서 반년이 흘렀다. 태어나서 겪은 여러 변화 중에서도 정말 역사에 남을만한 변화의 한 해다. 나는 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IMF로 인해서 가정에 꽤나 풍파가 있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원래 그런 성향인지 모르지만 나는 막연한 미래를 항상 불안해하곤 한다. 언제나 내가 안주하는 평화로운 일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불안증(?)의 일환인지, 나는 해외 뉴스나 경제 동향을 자주 확인하곤 했다. 내 의지나 노력은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에.


안주 하는 것은 불안했다. 기민하게 세계의 정세를 체크했다. 극단적으로, 전쟁 터졌는데 창업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꼭 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다닐 수 있을까. 언제까지 경제 상황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난 공무원이 아니니까 뜬금없이 잘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 전만 해도 선생님, 공무원은 지금처럼 목숨 걸고 잡아야 하는 신의 직업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이 되었던 친척은 지금 너무나 안정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 당시 누가 알았을까? 이런 변화를.


세상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내 일상은 고요하고 무탈했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는 7년 간은 큰 사건 없이 흘러갔다. IMF급의 갑작스런 변화가 올 수도 있다며 긴장하고 사는 내가 지나치게 과민한건가. 이런 식으로 평화로이 세상은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할 무렵 '코로나'가 나타났다. 코로나라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인해서 갑자기 온 세상이 마비된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메르스'나 '사스'처럼 일상을 바꿀 만큼 영향을 주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 이전과 그다지 다를 이유도 없어 보였던 2020년은 갑자기 SF 소설에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언택트 시대라며 대다수의 IT기업들은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기본 소득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온라인으로 공교육, 대학 교육이 실시되었다. 자유로웠던 해외여행이 하나 둘 막히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몇십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괜히 많은 SF 소설들이 2020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개화기 조선 사람이 된 것 마냥 어리둥절한 채로 하루하루가 낯설다.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그런 변화가 일어난 순간 상황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생존을 위해 자신을 재빨리 바꾸는 것 정도일 것이다.

<New philosopher 2020년 10호 발췌>


이 글을 보고 아차 싶었다. 결국 나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계속해서 불안에 떨었지만... 그것은 결국 무용한 행동이었다. 어차피 변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야 변화인 것이다. 내가 예측했다면 그건 이미 변화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오히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이나 재택근무, 원격 진료, 온라인 교육 같은 것들도 아주 오래전부터 기술이 발전하며 서서히 얘기가 나왔지만, 정말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계속 왈가왈부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상황이 오자 일사천리로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어떤 기조가 오래 고착화되면 그 시스템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어진다. 그 시스템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했을 기득권층에서 굳이 그들의 위치가 뒤바뀔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자들은 기득권층이다. 그래서 하나의 권력이 정착하고 시스템이 갖춰진 후에는, 전쟁, 기술 변화, 사상 혹은 경제 체제의 변화, 전염병... 이런 '대비할 수 없었던 상황'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변화될 사회 다방면에 대한 예측들은 꽤나 많은 전문가들이 다루고 있다. 그런 사회의 변화에 대해 적은 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나라는 작은 존재가 변화라는 것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가. 반성하는 글에 가깝다. 다 쓸모없는 번민과 고뇌였다. 괜히 불안해하다 보니 몸만 상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여느 때보다 더 칠흑 같은 미래를 대책 없이 바라만 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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