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많하않

뜻 : 할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다.

by alerce

며칠 전 남이 운전해주는 차의 조수석에 타게 되었다. 나도 운전을 할 줄 알다 보니,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자꾸 긴장이 되고, 좀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움찔움찔하게 되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흡사 30대의 연애가 아닌가..?


운전을 해본 사람은 어떻게 차가 움직이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대략적인 감이 생겨난다. 한 순간의 실수로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는 곳이 도로라는 것을 한 해 두 해 운전할수록 체감하고 있다.

이 감은 조수석에 탈 경우엔 나의 경우처럼 도리어 독이 되곤 하는데... 어쩐지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괜스레 내내 걱정에 휩싸이곤 한다.


'아이고, 너무 옆 차선이랑 붙는 건 아닌가?..'

'여기서 길을 잘못 들면 안 되는데..'

'졸음운전을 할 수도 있으니 내가 깨있어야지..'


... 이런 호들갑은 오히려 운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냥 눈 딱 감고 있으면 무사히 도착해 있곤 한다. 오히려 운전을 안 해본 사람들은 조수석에서도 맘 놓고 경치를 구경하거나 편안하게 잠들곤 한다.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자도 자신을 믿어주니 덜 긴장하고 운전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처럼, 연애를 하다가 발생하는 잦은 다툼, 그 끝에 발생할 헤어짐 등이 나에겐 너무나 큰 상처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대 때는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바로 눈에 쌍심지를 키고 싸우거나, 토라지곤 했는데. 이제는 할말이 많지만 굳이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어릴 적엔 연애의 과정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감이 없었기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20대를 거쳐 오랜 만남도 가져보고, 여러 사람도 만나보면서 꽤나 그럴듯한 연애를 마치고 나니, 나는 이제 어떤 조수석에 올라도 겁에 질려버리는 것만 같다.헤어지는 것이, 싸우는 것이 전보다 꽤나 두렵다. 그래서 할말이 있어도 하지 않게 된다.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안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할많하않' 부딪혀 싸우고, 열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이런 식으로 감정 소모하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묻어두기도 하고,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가버리곤 한다.


그 때문에 더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차를 운전하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들어 버리는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미 그럴듯한 사랑을 경험해본 나는 운전자를 완전히 믿기 전까지 계속해서 쉽게 불안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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