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 아직은 사귀기 전이지만 뭔가 있는 사이.
삼귀다? 우리 때는 썸타다라고 했었는데 요즘 신조어로는 삼귀다 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연애 전에 서로의 확신을 가지기 전의 텀을 가지는데, 그것을 '삼귀다' 혹은 '썸탄다'라고 표현하는 듯 하다. 아직 사귀기로 약조(?)한 사이는 아니지만,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일단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모호하지만 둘다 호의를 가진 티를 조금씩 내주어야 이 관계가 지속된다. 먼저 문자를 씹거나, 약속을 거절하거나 하면 타이밍이 애매해져 관계가 흐지브지되기 일수이다. 그러니까 조금은 자유로우면서 불안정한 관계인 것이다.
보통은 이렇게 삼귀는 사이이던 썸타는 사이이던 중간 단계를 거친 후 최종 심사에 합격하면 누군가 고백을 하게되고 그 둘은 한 문턱을 넘은 공식적인 사귀는 사이가 되게 된다. 이제 누구한테나 난 연인이 있다라고 공표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은 나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연락 왜 안해? 누구 만나? 오늘 뭐했어? 당당한 질문을 건넨다. 하지만 이 권리(사귀는 사이)를 얻기 전까지는 누구나 겪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관계 없이는 연애를 시작할 수 없다.
여기서 문제는, 요즘들어 이런 관계까지만 가지다가 흐지브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받기 싫은 사람들은 점점 깊은 관계를 회피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난 이사람과 여기까지 선까지만 같이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최근 애착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회피형, 불안형, 안정형이라는 애착관계가 유년시절 부모, 가족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의 일생동안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한다. 물론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 성인이 되서도 이 유형은 바뀔 수 있다고들 하지만,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이 쉽게 바뀔까 싶다.
나에겐 회피형의 경우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 유형의 애착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남과 진지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회피한다고 하는데, 이는 인격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떤 관계가 깨졌을 경우 받는 스트레스에 다른 유형보다 취약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회피하기 위해서 자꾸 도망다니는 것이다. 책임감을 가지는 관계를, 깊은 관계를 애초에 차단한 사람들이 회피형 애착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오호라. 애착 관계를 알고는 내가 오랜 시간 미제 사건으로 남겨두었던 몇몇 중간선에서 아슬아슬한 관계만을 고집하던 남자들의 행동이 처음으로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일 년간 썸을 타고도 관계를 정립하지 않던 남자...
즐겁게 여행을 다녀온 후 갑자기 거리를 두던 남자..
분명 선을 그었는데 며칠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락이 오던 남자...
분명 날 좋아하는 것 같은 시그널이 있는데도 관계를 정립하지 않고 모호한 행동들로 날 혼란스럽게 만들던 남자들. 다들 나와 삼귀는 사이였던 것이었나보다. (너희 맘대로?) 이런 사이만을 고집하는 이들은 아마 자신이 상처받는 대신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을 택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런 회피형 사람들은 나의 뇌리에 아주 깊게 남았다. 닫힌 문이 있으면 열고싶은, 어려운 문제에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 같은 욕구인 것 같았다.
어차피 그들만의 온전하고 안전한 세계. 그 단단한 성벽 안에 나는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단단한 문 앞에서 혼자 몇 날을 기다리며 상처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 어려운 문제를 몇날 며칠을 잡고 있어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그들이 무심코 보여주었던 진심이 기억나는 날에는... 왜 그 손을 놓아버렸을까 미안해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