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 에게

올바른 사랑의 시작에 관하여

by alerce


오직 너만을 생각한 밤이 있었어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건지

아무래도 네가 너무 좋아진 게 아닐까

이게 바로 사랑인가 봐

처음 본 순간 나는 느꼈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너란 걸

난 네게 말하고 싶어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다고

어떡해야 내 마음을 알겠니

네가 나의 전부라는 걸


박기영 - 시작



사춘기의 나는 연애가 너무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의 일기장을 보면 늘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학교 선배를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짝사랑하거나, 동급생 중에 조금만 나에게 잘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사랑에 빠지곤 했다. 심지어는 다른 친구들이 잘생겼다고 하면 괜히 나도 같이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춘기의 나는 관심을 둔 것에 비해서는 성공적인 연애를 하지 못했었다. (흑..) 앞서 말했듯 연애에는 늘 관심이 많았으나 이런저런 해프닝만 남발하고 다니는 편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프닝이라 함은 이런 것들이 있었다. 뜬금없이 누가 나에게 고백을 한다던가, 역시나 뜬금없이 내가 고백을 한다던가,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열정적으로 짝사랑을 한다던가. 한 달도 못 가서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그런 일들.


그때가 벌써 어언 10년도 지난 옛날이다. 당시에는 어른들의 연애관부터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었고, 미성숙한 사춘기 아이들은 그런 방식을 따라 하곤 했다. 그런 방식들은 어떤 속설로 전승되어왔는데, 그 당시 내가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규칙은 누가 먼저 사랑을 시작하느냐의 결정권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고백은 늘 남자가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암묵적 규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는 은근히 마음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럼 여자가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빨리 연애를 하고 싶던 사춘기 소녀 그 자체였던 나는 왜 여자는 맘에 드는 사람에게 대시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저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당차게 고백을 하곤 했는데, 꼭 그렇게 고백을 하면 대차게 거절을 당하곤 했다. 설사 사귄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하곤 했다. 정말 여자가 고백을 하면 매력이 떨어진다는 속설이 진짜인 걸까? 지금 생각하면 귀엽고 웃긴데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와서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과가 처참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나에게 '여자가 먼저 고백한다'라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위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는 그래서였는지 호감이 생겨도 먼저 고백은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음을 비추는 노력을 하되, 리액션을 보고 판단을 한 후 조심스럽게 행동을 결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과제를 잘 도와주던 학교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뜬금없이 고백을 한 것이다. 나는 어떤 여지를 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난 그분을 한 번도 이성으로서 본 적이 없어서 갑작스러운 고백에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 난감한 감정 때문에 더 감정적인 방어막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고백이라는 충격 요법으로 다 사라져 버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결국 옛날의 내가 빨리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에게 무작정 고백했던 것도 이와 같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갑작스럽고 미성숙한 고백에는 상대의 감정에 대한 일말의 배려라고는 없었으리라. 상대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 행위였을까. 이것은 여자여서, 남자여서의 문제를 떠나서 어쩌면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사실을 나는 돌아 돌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헤매었던 이유는 어쩌면 고리타분한 연애 관련 속설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고백을 하면 안 되고 기다려야 해. 남자가 먼저 대시해야 해.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더라. 여자는 밀당을 해야 해. 잡힌 물고기가 되어선 안된다. 따위의 표현들... 사실 여자가 먼저 고백해도 되고, 남자가 꼭 먼저 대시할 필요는 없으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갈 사람은 안 넘어간다. 저런 속설들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젠 안다. 계산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이 훨씬 큰 행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고백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여성다움을 앞세우며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보다는,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표현하며 다가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남성다움을 앞세워 자신의 감정을 무작정 강요하는 것보다는, 성별을 떠나서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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