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 에게

집착과 불안 그 사이에서

by alerce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그러게 왜 그랬어

왜 애초에 그런 말을 했어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질 못할 거면서

아 또 왜 울어 나는 뭐 괜찮아서 이래

그렇게 모진 말도 잘만 했었으면서

왜 그러고 섰어 일루와

얼른 일루와


장기하와 얼굴들 - 그러게 왜 그랬어



첫 연애를 처음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중학생 때였다. 연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라 누군가가 몇 번 사귀어 봤냐고 물어본다면 손가락에 세지도 않는 그런 연애들 말이다. 한 달 만에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였고, 제일 오래간 것은 아마도 100일 언저리였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 글을 써보니 그 당시의 실패의 경험들이 나를 얼마나 성숙하게 만들었는가, 부끄러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나는 유년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보낸 시간이 길었다. 형제가 아파서 할머니 댁에 2살 때부터 몇 년간 맡겨졌었기도 하고, 유치원생 때부터 모친은 워킹맘을 자처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이 이유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불안형 애착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났다.


관계를 쉽게 불안해하는 나는 연인과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변할 때까지가 늘 고비였다. 불안증 환자처럼 나는 아주 사소한 연인의 행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문제는 불안해하다가 혼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내가 상처 받는 게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랬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의도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늘 관계를 먼저 파탄 냈던 것은 나였다. 사실 호감을 가진 대상을 하루아침에 싫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도, 나를 섭섭하게 하면 잠수를 타거나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남발했다.


나를 좋아한다면 분명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는 것을 혼자 정해놓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연인들은 날 그만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일단 그런 마음이 들면 자존심이 상해서 정이 뚝 떨어지곤 했다. 예를 들면 연락이 안 온다거나, 답장이 늦는다거나, 나 말고 다른 여자아이와 말하는 것을 봤다던가 하는 그런 아주 사소한 행동들에 쉽게 정을 떼곤 했다.


그러니 100일 이상 사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다. 불안형 애착관계를 가진 사춘기 소녀는 이런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쩌면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 같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행복한 연인 관계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나의 몹쓸 집착증, 불안증을 가라앉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은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200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말아 보자는 생각까지 했다. 나보다 다른 것이 우선이든, 연락이 오든 안 오든, 표정이 좋든 안 좋든, 만남의 횟수가 어떻든, 여사친과의 관계가 의심스럽든... 200일 까지는 자존심이고 뭐고 관계에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룰을 세웠다.


다소 단순한, 어쩌면 당연한 이 룰은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난 최선을 다해 나와의 약속을 지켜보았다. 이 룰을 직접 실천해보고 어떻게든 오래 관계를 유지해보면서 점점 나는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집착을 줄이기 시작하자 오히려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배려하는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불안해하고 의심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자존심을 내세우며 헤어지자는 말을 남발하던 나는 조금은 성숙해졌을까. 가끔 연인의 매사에 너무 쿨해진 나의 태도가 친구들에겐 의아하게 다가가기도 하는 것 같다. (극단적인 나란 사람..) 일일이 집착하고 불안해하기엔 안정적인 연애는 너무 행복한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일까. 서로 좋은 말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나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들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는 일은 아마 다신 반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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