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세일링 요트를 타는 사람이 비주류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다만 지중해와 북미를 둘 다 경험해 보니 그나마 지중해가 보통 사람이 요트를 접하기 훨씬 수월한 구조인 것 같다. 지중해에선 세일링 경험이 있는 친구 없는 친구 다 같이 모여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려 나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라면, 북미 친구들은 뚜렷한 목표의식 아래 세일링 교육을 받고 필수적인 경험을 쌓자마자 대양으로 나가 입에 칼을 물고 항해를 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지중해 세일러들에게는 지중해 밖으로 나가야 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는 반면, 북미 서북부에서는 멀리 나가지 않고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바다를 만날 기회가 없다. 바다 수영 따위는 포기하고 배 위에서 세일링만 즐기려 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수많은 해협, 조류, 조수차.. 그리고 바 크로싱까지 있으니 말이다.
항해하면서 바다에서 본 북미 서북부의 전형적인 해안 풍경은 높은 절벽이었다. 마치 굳게 닫힌 철문 같이 느껴졌다. 높은 산맥과 가파른 지형은 바닷물 밑으로도 비슷하게 이어져 내려간다. 이 지역에는 세 가지 종류의 파도가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대양에서 밀려오는 너울성 파도이고, 두 번째는 바람이 만드는 파도이다. 이 둘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오기 때문에 조타가 어렵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세 번째 파도도 있는데, 해안 수중 절벽에서 튕겨져 나오는 파도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배가 쉴 수 있는 자연 항구는 대부분 강물이 태평양으로 빠져나오는 하구에 형성된다. 강물이 실어온 퇴적물이 수심이 완만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해저에 도로 둔덕처럼 가로로 쌓이기도 한다. 물이 빠져 수심이 낮아질 때면 이 둔덕 위에서 파도가 부서지고, 태평양에서 밀려 들어오는 너울과 썰물이 만나면 물 덩어리들이 정면충돌을 하며 상황이 더욱 험악해진다. 안전한 타이밍에 맞추어 둔덕(바)을 건너는 것을 '바 크로싱'이라고 하는데, 북미 서북부 해안 항해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더 이상 바 크로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지만, 그전엔 출항, 입항 시간과 가능한 항해 일정이 바 크로싱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약한 바람을 발견하고 혹시나 이 황금 타이밍을 놓칠세라 조바심이 나서 좀 일찍 출발하긴 했지만 바 입구에 다다른 시간은 이미 09:10였다. 물이 멈추어 있는 간조가 지난 지도 이미 30분 뒤. 그런데 바 입구에 다 와서야 예측 못한 하얀색 줄을 목격하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빨라졌다.
강 쪽 물도, 바 건너 바다 쪽 물도 잔잔한데 그 경계 즈음에 하얀 줄 딱 하나.. 아마 저 밑에 해저 둔덕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낚시투어 가게 주인이 느지막이 출항하라던 이유가 저거였구나 싶었다. 밀물이나 썰물 문제가 아니라, 수심이 너무 낮은 게 문제였던 것이다. 가게 주인의 제안대로 간조 이후 한 시간쯤 기다렸다 출항했다면 물이 충분히 차올라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높은 파도를 탈 때에는 최소한 파도와 물의 흐름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에 대응할 수가 있다. 이곳에서는 물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해저 지형에 어떻게 영향을 받아 배가 지나갈 때 어떤 리액션을 할는지 모르는 것이 많아 두려웠다. 다가가 가까워질수록 참 이상해 보이는 물의 흐름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파도가 한 번은 오른쪽으로 깨지고 다음 번은 왼쪽으로 깨졌다. 게다가 대체로 평온한 바다에서 바 입구만 저러고 있으니 더 무서웠다.
밴든이 위치해 있는 코퀼 강Coquille River은 작은 강이라 바 입구도 매우 좁다. 최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 양 쪽 방파제로 떠밀려가 충돌하는 사태였다. 중앙으로 통과하되, 파도가 덜 깨지는 조금 왼쪽으로 진로를 잡고 배의 제어력을 잃지 않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높진 않았어도 '수직 파도'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했다. 호라이즌스 호가 무거운 배라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큰 파도 한두 개를 넘어, 무사히 열린 바다로 나올 수 있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 추세인 것 같아 제노아 대신 더 작은 스테이 세일stay sail을 올렸다. 메인세일은 이미 가장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놓은 상태. 앞으로 한동안 강풍 구역을 지나야 했기에, 속도를 좀 양보하더라도 세일은 가장 작은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점점 죽어, 곧 태평한 태평양을 엔진 항해하게 되었다. 혹등고래들이 여럿 나와 인사해 주었다. 우리 배가 궁금했는지 바로 옆까지 다가와 슬로 모션으로 물분수를 뿜더니 등을 보이고 곧 커다란 꼬리를 수면에 수직으로 올렸다. 언제 봐도 참 우아한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고래가 등장하는 순간 바다 전체가 시적으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케이프 블랑코는 길게 튀어나온 뾰족한 산악지대로, 미국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지점이다. 5마일 정도 서남쪽에 있는 바위섬 폭스락Fox Rock과의 사이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떼지어 있다. 북서풍을 뒤로 받으며 육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항해를 하되, 안전을 위해 폭스락에서 넉넉하게 5마일쯤 거리를 두고 돌아가는 항로를 계획하고 출항했다.
오후 두 시부터 바람이 제대로 일기 시작하더니, 케이프 블랑코를 지났나 싶은 지점부터 바람이 순식간에 거세어졌다. 육지 쪽으로 접근하면 바람이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계획보다 일찍 자이빙을 해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바람은 더욱더 험해질 뿐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빨라지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오르포드 항을 감싸고 있는 곶 안쪽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곶이 바람을 막아줄 것이므로, 그때까지만 버텨 보기로 했다.
그런데 곶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자 바람이 오히려 더 세졌다. 어김없이 여기도 게 통발은 지뢰처럼 퍼져 있었고, 뱃머리 앞엔 절벽이 보였고, 세일을 완전히 열어 바람을 최대한 뺀 상태에서도 바람에 밀려가는 배 속도를 줄일 수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오르포드항 쪽으로 접근하려고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니 이제 미친 맞바람이었다. 데크 위는 난리가 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상태로라면 닻을 내리기는커녕, 섣불리 육지에 접근했다 좌초하기 십상이었다.
배를 돌려 차라리 먼바다로 나갈까 선주와 급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질러도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고 세일은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배꼬리에 달린 풍력 발전기는 저러다 그냥 떨어져 나가 헬리콥터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일단 닻 내리기로 한 곳 바로 앞까지 접근해 본 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배를 돌려 먼바다로 나가기로 하고 오르포드 항 쪽으로 접근했다. 곶에 들어왔을 때 이미 한 번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에 닻 내림 포인트까지 접근한다고 바람이 줄 것 같은 희망이 전혀 없었다.
그 난리통에 선주가 데크에 나가 메인세일을 내리고 막 콕핏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둘이 상상하고 있던 닻 내림 포인트의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정면에는 중앙의 방파제를 기준으로 두 개의 만이 붙어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아래와 같은 만이 있었고,
왼쪽에는 아래와 같은 만이 있었다.
이름이 오르포드'항'인 곳에, 선착장은 비록 없더라도 배가 닻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해변도, 집도 있는 오른쪽 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기가 항구 마을일 테니까. 그러나 선주는 그 왼쪽의 절벽 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교감신경이 극도로 흥분되어 있던 나는 선주에게 소리쳤다.
"아니, 저런 절벽 밑은 수심도 깊고 바닥도 바위일 텐데 닻을 어떻게 내려요!"
그것도 강풍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그런데 가이드북 등을 참고해 어제 저녁 미리 GPS 점찍어 놓은 닻 내림 포인트는 황당하게도 절벽 밑이었다. 두려움과 의심 속에 절벽 바로 앞까지 접근하자, 농담처럼 바람이 잦아들었다. 이렇게 높은 절벽 정도는 되어야 이 강풍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선주를 좀 더 믿어 주었어야 했는데, 새삼 화내며 소리지른 것이 미안해졌다.
만 안쪽엔 불쑥불쑥 튀어나온 위험한 바위들이 있어 현장을 두 바퀴쯤 신중히 시찰했다. 닻을 내리고 나니 주위가 어느새 따뜻한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수면에 낮게 반사되는 저녁 햇빛을 배경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려는데 실내에서 웬 연기가 햇볕을 받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게 뭐지?"
얼른 엔진룸 뚜껑을 여니 정말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선주가 출항 전에 엔진오일을 체크하면서 엔진스틱을 휴지통에 꽂아 놓고 깜빡했단다. 뚜껑 없이 하루 종일 열일한 엔진 오일은 많이 닳아 있었다. 작년에 왔던 판토찌가 잊지도 않고 또 왔네...
고르고 골라 바람이 가장 약한 날 출항을 했는데도 오늘 케이프 블랑코가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저녁식사 즈음부터 바람이 좀 나아지긴 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닻 체인의 충격을 흡수해 주는 장치를 설치하는 게 좋을지, 않는 것이 나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배가 흔들릴 때 닻 내림 장치를 보호하고 실내에서 좀 더 편안히 머물게 해 주지만,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때문에 신속하게 닻을 올리지 못할 위험이 공존했다. 깜깜한 밤, 패닉에 빠져 이 장치를 깜빡하고 닻을 올리려다 체인이 엉켜 버리는 재난 상황도 자꾸 눈앞에 그려졌다.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새벽부터 강풍이 다시 시작되며 배가 흔들렸다. 드르륵드르륵 닻을 중심으로 배가 돌아가며 체인이 돌바닥에 긁히는 소리와 텅- 하며 체인이 홱 당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불안함을 애써 잠재우며 침대에서 버티다가 "탕!" 하고 배를 울리는 굉음에 선주와 나 둘 다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자동으로 기상했다. 둘 다 어차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상, 하의 요트복을 챙겨 입고 만일의 출항 준비를 해 놓은 뒤 콕핏에 나가 앉아 해 뜨기를 기다렸다.
일출이 얼마 남지 않자 강풍이 가라앉아 조용해졌다. 닻을 올리고 GPS에 보이는 바위들을 조심조심 피해 만밖으로 나오자마자 파도가 배를 무자비하게 흔들고 배는 속절없이 좌, 우로 기울었다. 달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밤, 파도에 맞추어 조타를 할 수도 없었다. 조타하는 사람과 콕핏에 앉아 있는 사람 둘 다 구명조끼에 연결된 안전줄을 배에 고정시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서 날이 밝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출항할 때 없던 바람은 일출 직후의 남풍에서 점차 북서풍으로 바뀌더니 강도가 세졌다. 어제의 패닉 이후, 오늘은 메인세일을 올리지 않고 제노아만 사용하기로 했다. 오후가 되자 이제 바람뿐 아니라 파도도 세졌다. 파도에 맞추어 조타하지 않으면 배가 심하게 기울었다. 오늘도 오토파일럿은 권고휴무중이었다.
오늘의 목적지 크레센트 시티Crescent City에 가려면 불쑥 태평양 쪽으로 튀어나온 지형 앞으로 대거 포진해 있는 암초 떼를 피해 가야 했다. 어제처럼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어느 순간 바람도 파도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수동 조타를 하느라 체력이 바닥나기도 했다. 자이빙을 해서,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해안 가까이에 가니 파도도 바람도 훨씬 나아져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암초를 피하기 위해 다시 바깥으로 나가야 하더라도 이 쉼 없는 강풍과 파도로부터 조금 쉬어 가야 할 것 같았다.
배도, 조타하는 사람도 좀 안정이 되니, 이 상태라면 암초 떼와 육지 사이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깥쪽으로 멀리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긴 하겠지만,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 해안 밖으로 나가는 즉시 제어 불능의 강풍과 파도와 또 싸워야 할 터였다. 조마조마했지만 큰 문제없이 그 사이를 지나 크레센트 시티에 도착했다.
18:30 입항. 밤잠도 설쳤고, 이틀 연속으로 뱃길이 험했기에 녹초가 된 상태였다. 크레센트 시티 항구는 강이 없이 움푹 들어간 지형으로 형성된 항구이기 때문에, 이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바 크로싱이 필요 없는 곳이다.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 다가가자 계류줄을 잡아 주러 세 사람이나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쪽 끝에 접안하려니, "저쪽으로 배를 대라"라고 조언했다. 우리가 밴든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처음 가는 마리나에서 누군가 여기 배 대지 말라고 한다면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순순히 반대쪽 끝으로 배를 옮겼다.
그곳엔 세일링 요트 몇 척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여기 배를 대라는 조언은, 단순히 옆에 같이 있자는 제안이었다. 이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배에서 온 사람들로, 여기 사는 사람, 온 지 몇 달 된 사람, 며칠 머물다 가는 사람이 섞여있는데 서로 잘 알고 지내는듯했다.
멘도시노를 넘을 만한 바람 적은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에릭은 친구와 둘이 항해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샌디에고에서 온 열혈 서퍼 션은 배에서 기거하며 이곳에서 서핑을 즐긴다고 했다. 마리나 오피스가 문 닫은 주말, 샤워실과 마리나 카드키를 빌려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차도 있는데 빌려줄까?"라는 제안으로 선주의 웃음보가 터지게 했다.
"캘리포니아 애들이 저래.."
아, 어느새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왔다. 오르포드 항에서 크레센트 시티에 오는 사이 오레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경계를 넘었다. 아직 따뜻한 남캘리포니아는 아니더라도, 감회가 새로웠다.
세 번째 계류줄 이웃은 우리 배와 같은 모델인 타야나 37피트의 선주 크리스였다. 은퇴 후 전 재산을 처분해서 한 달 전에 배를 구입했고, 준비가 되는대로 멕시코로 내려가 따뜻한 바다에서 은퇴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이 친절이 넘치는 분위기의 마리나에서도 크리스는 유난히 친절했다. 우리가 멘도시노를 넘어 내려갈 계획이라고 하자, 다음날부터 멘도시노 관련 정보를 듣는 대로 우리 배를 찾아와 두드렸다.
며칠 전 남쪽에서 멘도시노를 넘어 올라온 토미도 크리스 소개로 알게 되었다. 토미는, 오늘 우리가 한것처럼, 멀리 돌아가는 대신 육지에 근접해서 암초 떼와 육지 사이로 오니 바람과 바다가 평온했다고 했다. 크리스는 같은 얘기를 한 사람이 둘이나 만났다고 했다. 멘도시노가 멀지 않은 곳, 이렇게 적극적으로 정보와 도움을 주는 마리나의 분위기는 큰 힘이 되었다. 마치 세일러들의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멘도시노가 근처에 있기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마리나의 배들은 우리가 지나가면 꼭 인사를 건네며,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주려고 했다. 멘도시노의 진정한 어려움은 강풍보다는 조류이며, 조류 때를 잘못 맞추면 세탁기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열린 바다에 조류라니.. 세탁기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주제였다. 아직 멘도시노에 도전하기에는 모르는 것이 많고 공부가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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