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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Nov 13. 2024

유레카!

시칠리아의 보석 시라쿠사에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살았다. 순금 왕관의 진위를 확인하라는 명을 받아, 깊은 고민에 빠져 욕조에 들어간 아르키메데스는 넘치는 물을 보고는 머리가 번쩍! 했다. 이것이 배가 물에 뜨게 하는 힘, ‘부력’이라는 개념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난제를 해결한 기쁨에 넘친 아르키메데스는 이 말을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왔다고 했다.


'유레카!!!'


오전 11시. 우리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유레카Eureka 항구 입구에 천천히 접근했다. 미 서부 해안 대부분의 항구에 들르며 내려온 덕에, 이제 바 건널 시간 계산하는 데에는 도가 튼 느낌이었다. 오늘은 바람이 약한 날이지만 너무 일찍 도착해도 아니 되므로, 엔진을 끄고 3노트가 채 안 되는 속도로 천천히 세일 항해를 했다.


세일링 요트의 속도는 보통 5노트로 계산하는데, ‘노트’라는 단위를 바다에서만 쓰다 보니 이게 어느 정도 속도인지 감이 없었다. 얼마 전, 선주와 길을 걸으며 항로에 대해 논의하다 핸드폰의 GPS 해도를 켰다가 화면 위 2.8이라는 숫자에 잠깐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걷는 속도가 2.8노트라는 뜻이었다. 역조류가 있거나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호라이즌스 호가 2.8노트 이하로 간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약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엔진 없이 항해하는 지금 역시, 사람이 걷는 속도와 다를 게 없다. 이럴 바에야 좀 더 늦은 시간에 출항했어도 좋았겠지만, 날이 밝자마자 떠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풀리지 않는 피로


크레센트 시티에서는 이틀 밤을 보내고 60해리 남쪽의 유레카를 향해 출항할 계획이었다. 5노트 속도로 계산해서 12시간 거리였다. 문제는, 유레카에서 바를 건널 수 있는 밀물 시간이 오후 5시면 끝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곧, 출항을 늦어도 새벽 5시 이전에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오르포드 항에서 밤을 새우고 이틀 연속 강풍에 고군분투했던 탓에 선주와 나 둘 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깜깜한 새벽에 다시 파도가 울렁이는 바다로 나가 고생할 생각을 하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꼭두새벽에 출항을 해서,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12시간 항해를 하고, 아슬아슬하게 오후 5시 이전에 바를 건너서 유레카 항에 가자고 선뜻 결정하기엔 아직 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날을 놓치면 다시 파도와 바람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발이 묶인다는 마음의 부담도 있었다. 잔잔한 날을 항구에서 보내기는 또 아까웠던 것이다. 차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우리는,


“내일 새벽에 일어나 보고 맘 가는 대로 결정하자.”


라고 결정을 미루고 잠의 늪에 빠졌다. 새벽, 맞춰 놓은 알람에 잠시 기상했던 우리는,


“역시 안 되겠다. 오늘은 쉬는 걸로 하자.”


하고 다시 꿈나라로 돌아가 늦은 시간까지 꿀잠을 잤다. 이렇게 크레센트 시티에서 긴 시간 머물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똑똑똑..


배 앞에 크리스가 서 있었다.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항해 정보를 물고 와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유레카까지 너무 멀다면 중간에 배 묶고 하룻밤 쉴 곳이 있어서 알려주러 왔어.”


오늘 새벽에 떠난다며 작별인사까지 해 놓은 배가 여전히 마리나에 묶여 있는 걸 보고는, 우리가 늦잠 자느라 출항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트리니다드Trinidad라는 곳인데, 부표에 배 묶고 안심하고 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거기 경관도 매우 아름다워. 자리 없을 때가 많으니까 먼저 전화해 봐.”


닻이 바위에 걸릴까, 닻이 밀릴까 걱정할 필요 없이 부표에 배 묶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귀가 솔깃했다. 정박 부표라면, 바 크로싱이 필요 없는 닻 내림의 장점에 더해 마리나만큼 안정적인 환경에서 밤을 보낼 수도 있을 터였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긴 했지만 오늘 트리니다드에 해 지기 전 도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크레센트 시티와 유레카 사이는 해안이 오목하게 들어가서 북풍을 좀 막아 주는 구간인 데에다, 오늘은 바람도 무난하다는 예보였다. 오랜만에 편안한 항해가 될 듯했다. 선주는 출항 직후 온라인 회의를 시도했으나, 너울성 파도에 중심을 잃는 모습을 몇 차례 화상으로 생중계한 뒤 미련을 버리고 접속을 종료했다. 바람이 약하다고 파도가 없는 건 아니다.


크레센트 시티 마리나 이웃 중에 케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항해 중 만난 쓰나미에 배가 파손되어 크레센트 시티에서 발이 묶인 친구였는데, 늘 배 위에 앉아 있곤 했다. 항해와 바다에 대한 모든 걸 아는 듯했던 케빈은 심심하기까지 했는지, 우리가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정보를 주곤 했다. 케빈은 우리 배가 심하게 흔들렸던 이유가 메인세일을 펴지 않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바람이 없든 강풍이 몰아치든 메인 세일은 최소한으로 줄여서라도 항상 배 중심에 촥 고정해 놨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걸 내리고 항해했기 때문에 배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케빈의 조언대로 바람이 있든 없든 메인세일부터 올려놓았다. 그러나 배 중심에 촥 붙였을 때는 물론이고, 세일을 제대로 조정해도 바람이 약해서 힘을 못 받으니 파도의 흔들림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약한 바람이 계속 이어져, 이대로라면 새벽에야 도착할 것 같았다. 


바람을 찾아 좀 더 먼바다 쪽으로 나가자 바람이 급격히 강해졌다. 오늘 바람이 약했던 것이 아니라, 오목하게 들어간 지형이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시간쯤 뒤에는 거친 강풍에 맞서 싸워야 했다. 요 며칠 우리를 괴롭히던 강풍은 변함없이 여기 있었나 보다. 태평양 참 별로고 정이 안 간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뭐 이렇게 시종일관 가혹하기만 할 일인가. 거드름 피우는 근육질 꼰대 같은 느낌이었다. 태평양 북미 연안을 '마초들의 바다'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 해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밤에 시야가 없으면 배 묶을 부표를 찾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촘촘히 놓인 부표에 묶인 다른 배들과 충돌 위험도 있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부표는 '가장 바깥쪽 줄', '흰색', '10, 11, 12번 부표 중 아무거나'였다. 열심히 가고 있었지만 이미 등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저녁 빛으로 흰색 부표들의 위치와 묶여 있는 배들의 위치를 대략 파악해 놓고 접근을 계속했다. 호라이즌스 호의 높은 뱃머리에 매달려 밧줄 던지기를 몇 차례 시전하여 부표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했다. 배를 묶고 보니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널럴하게 시작했지만, 오늘도 이렇게 강렬하게 마무리했다. 온몸을 휘감는 피곤에, 얼른 내려가 자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입항


파도가 호라이즌스 호 머리끄덩이를 잡고 난폭하게 잡아채는듯한 움직임이 밤새 끊이지 않았다. 닻 내린 배가 흔들리는 것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닻을 내리면 긴 체인이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해 주는 반면, 부이에 짧게 묶인 배의 흔들림은 거의 폭력적이었다. 침대에서 떨어질까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 포복 자세로 버티다가 결국 또 두 사람 다 말없이 일어나 요트복 상하의를 갖추어 입고 출항 준비를 마쳐 놓은 뒤 깜깜한 콕핏에서 차를 마시며 아침을 기다렸다. 


섣불리 출항했다가 암흑 속 파도에 시달리던 경험을 상기하며 이번엔 해가 뜨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래도 이제 유레카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무난한 구간이었다. 바 건너는 시간 때문에 일찍 도착할 수도 없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낚싯대를 드리웠다. 2-3노트로 끌고 갈 때 고기가 많이 문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이 동네엔 유난히 펠리컨이 많다. 거대한 부리 때문에 유명하지만, 덩치도 크고 나는 모습도 굉장히 멋진 새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 해협에서 태평양으로 나오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했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숫자가 많아지는 것 같았다. 무서운 속도로 직진 하강하여 자맥질을 하는 것을 보니 여기 물고기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낚싯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유레카 바를 건너자마자 주유 선착장부터 찾았다. 그런데? 보자마자 지금 장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하게 작은 선착장.

출처: https://mosaicvoyage.com/2021/09/06/cruisers-review-eureka-public-marina


도저히 배를 댈 수가 없는 사이즈인 데에 더해, 그나마 주유를 하려고 배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주유하는 동안 안개가 몰려오더니 한 순간 사방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구나. 캘리포니아도 남부까지는 내려가야 안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더니. 


오레건엔 없던 캘리포니아 주 세금까지 더해져서, 주유한 디젤 연료 가격이 정확히 두 배였다. 계류비는 얼마나 비쌀 것인가 조마조마했으나, 예상외로 굉장히 저렴했고 일주일 요금, 한 달 요금은 더더욱 저렴했다. 유레카는 멘도시노에 내려가기 전 마지막 항구이기 때문에, 여기서 좋은 날씨를 기다리며 배들이 길게는 몇 주씩 기다리기도 한다. 계류비라도 저렴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비슷한 루트를 왕복하는 세일러들이 모이던 크레센트 시티와 달리 여기는 장기 계류 어선이 대부분인 썰렁한 마리나 같았다. 여기서 꽤 오랜 시간 기다리게 될 것 같은데 세일러 친구를 만드는 일은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다운타운은 마음에 들었다. 마리나와 가깝기도 하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멋진 건물이 많았다. 종종 시내에 나와 맥주도 한 잔 하고 산책도 하고, 어쩌면 유레카에서 심심하게 지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덕이


동네 산책 중에 큰 수산물 공장을 발견했다. 우리 실력으로는 고기를 낚지 못하니, 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수산물 공장이 문 여는 대로 생선을 파는지 물어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마리나에서 호라이즌스 호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정박된 어선들 중에 혹시 생선 파는 곳이 있나, 매의 눈으로 스캔했다. 그중 한 어선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니 기계를 고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마리나에는 생선 파는 어선 없나요?"


야구모자에 후드티를 입은 넉넉한 분위기의 어부가 수리하던 손을 멈추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상업 어선이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자기네 팀 배 한 척이 오늘 밤 들어올 예정이니 남은 생선이 있는지 물어보라는 정보까지 주었다. 


배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혼자 또 외출했다 돌아온 선주,


“알레씨아, 아까 그 어부가 멘도시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 핸드폰으로 자료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데 나는 잘 이해 못 하겠으니까 어서 나와봐.” 


후드티 어부가 아까와 다른 배 위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보는 형태의 어선이었는데, 크기가 아담하고 짙은 갈색의 나무 부분이 아주 아름다운 배였다. 후드티 어부의 이름은 덕Doug이었다. 더글러스Douglas의 애칭이지만, 왠지 '순덕'의 '덕'이 더 어울릴 만한, 그의 푸근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포트 브랙Fort Bragg이 고향이라니 더 반가웠다. 순덕은 포트 브랙과 유레카를 거점으로 미 서부 태평양을 누비며 멘도시노를 수없이 왕복한다고 했다. 멘도시노를 잘 아는 진짜배기는 어쩌면 세일러보다 이곳 어부들일지도 모르겠다. (유레카!!!)


멘도시노를 돌 때 바람보다 조류를 더 주의해야 한다는 크레센트 시티의 만물박사 케빈의 말을,
순덕에게서 다시 한번 들었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멘도시노의 지형 때문에 위아래에서 오는 서로 다른 물의 덩어리가 충돌하는데, 이는 바를 건널 때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특히 케이프 멘도시노 바로 아래의 푼타 고르다Punta Gorda 앞이 가장 치명적이어서, 그곳은 정확하게 물이 멈춘 시간에 맞춰 지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푼타 고르다에서 말 그대로 집채만 한 파도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순덕이 어리고 치기에 넘치던 시절, 포트 브랙에서 유레카로 올라오던 길에 그런 파도를 만난 적이 있었다. 배를 돌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던 어린 순덕은 그 바다와 맞서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이러다 배가 부서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머리 돌려 포트 브랙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고작 30분이 지나 뒤돌아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가 완벽하게 평평해져 있었다. 능숙한 뱃사람이 된 지금은 푼타 고르다에 물이 멈추는 시간 30분 전에 먼저 도착해서 상황을 살핀 뒤, 확신이 서야만 지나간다고 했다. 


순덕은 핸드폰을 꺼내 일기예보를 체크하더니, 적어도 앞으로 열흘간은 멘도시노를 넘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교차 체크하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일기예보 소스와 계산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일기예보 얘기가 끝난 후 수다는 순덕의 아름다운 목선으로, 목선을 만드는 방법으로, 순덕의 배와 순덕 사이의 신뢰 에피소드로, 프로페셔널 어부들이 고기를 찾아다니며 잡는 방법에서 돈 떼어먹고 치사하게 구는 떼는 클라이언트 얘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항상 물어보는 것에 더해 '한마디'를 더하는 바람에 수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외롭게 지낼 각오를 하고 있던 유레카에서 친구가 생겼다.


순덕 덕분에 미국 상업 어부들의 세계도 좀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 어부들은 한번 출항을 하면 먼바다까지 며칠을 나가서야 고기를 잡기 시작한다고 했다. 순덕은 어느 누구도 고기를 잡아 보지 않은 곳에서 고기를 잡는다며 눈을 빛냈다. 미국 상업 어부들은 진정한 사냥꾼같이 좀 멋진 구석이 있어 보였다.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콕핏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 해 지는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는데 순덕의 배 쪽에서 연기가 길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혼자 바베큐를 해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순덕이 혼자 밥 먹나 보다. 우리가 가서 동무해 주자."


선주의 제안에, 마시고 있던 싸구려 대용량 와인과 치즈를 챙겨 순덕의 배로 향했다. 밤늦게 술병 들고 찾아갈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수가. 


우리가 간다 순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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