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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역 Mar 07. 2023

잠시, 성공에 대한 사색

성공/출세하면 뭐 하지?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답했다거나, "우리 나중에 성공하면 뭐 하지?" 하는 동료의 말에 "그랜저 사야지"라고 대답하는 식의 CF는 이른바 그랜저 식 성공 마케팅이다. 가끔 논란도 일었던 모양이지만 결론적으로 그 마케팅은 늘 통해온 듯하다.


 유학시절부터 해외영업 직무만을 목표하고 고집하면서 나의 무의식 중에는 무역으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이 녹아 있었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한강을 건너온 청춘이든 태평양을 건너간 젊음이든 "졸업하고 뭐 하지"라는 고민을 할 때 그 근본에는 "뭐 해서 성공할까"라는 원초적인 고찰이 담겨있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다가 흔적 없이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무난하게 사는 것이 힘든 시절일수록.


그랜저는 대명사다. 그것은 꼭 그랜저라는 현대차의 상품이 아니라 호수공원이 보이는 집이나 광나는 명패가 놓인 근사한 사무실일수도 있다.

 내 어머니의 아버지는 자수성가의 표본 같은 분이시다. 한국전쟁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학교라고는 [육군수송학교]를 수료한 것이 전부였고 군에서 배운 운전을 사업으로 이끌어낸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검은색 포텐샤를 타셨다. 할아버지에게 차는 운송수단이 아니었고 단순한 생계도 아닌 자아였다.


 나에게 이모, 즉 할아버지의 셋째 딸. 그녀의 남편은 지방사립대를 나왔지만 내로라하는 증권사의 지점장까지 거쳤으니 모교출신 중에는 가장 성공한 축에 속했다. 그는 부장으로 승진할 즈음에 신형 그랜저를 뽑았다. 언젠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나에게 장어구이를 사주며 "남자도 패션에 신경 써야 된다. 이제 취직도 했으니 단벌신사 삶은 청산해라"라고 하셨다. 평생 영업을 한 사람이 새로 영업을 시작하는 조카에게 해준 나름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나중에 시계도 좋은 것으로 하나 사라고 권했다. 그의 손목에는 새로 산 태그호이어가 채워져 있었다.


Accessible luxury. 태그호이어의 브랜드 포지션이자 철학 중 하나다. 사회에 나와보니 웬만한 남자들은 다 하나씩 가지고 있더라.

 할아버지는 배운 것 없이, 시장에서 단무지 사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던, 맨주먹으로 성공한 소년이 꿈꿀 수 있는 성공의 열매들은 다 성취하셨을 것이다. 군에서 자신들이 모셨던 군정요인들처럼 검은색 세단을 타셨고 직원들을 많이 둔 법인을 운영하셨으며 무엇보다 네 명의 딸들에게 모두 학사모를 씌우셨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이모부도 분명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신도시의 자가를 가진 대기업 부장이고 그랜저는 이모에게 주고 본인은 BMW를 새로 뽑으셨더랬다. 


 이런 어른들만 주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세속적인 유희는 즐겼으면서 성취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그 남자는 결국 세속적이지 않은 존재들(예를 들면, 나)과도 멀어졌다. 나는 그것이 슬펐고 그에게 분노했다. 


 할아버지가 은퇴하신 지 오래되셨고 이모부의 근속도 쌓일 만큼 쌓였다. 이제 나의 성공을 생각해야 한다.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하려 들면, 이미 전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마주한다. 사람들 참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산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하다. 모든 행동에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성공하고 싶다. 대학 시절, 구직할 직무를 정할 때 출장이나 주재원 같은 (그 당시 상상으로는) 콩고물에 앞서 어떤 업계에서 성공할지를 먼저 고려했던 그 4학년 아이와 지금의 4년 차 사원은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그랜저와 태그호이어에 그친다면 조금 심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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